622km한반도종단4 - 준비 과정
622km한반도종단4 - 준비 과정
대회 두어 달 전부터는 대회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횡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이력이 붙었을 법도 한데, 좀 알만 하니 더더욱 신경 쓰이는 게 많아진다. 일 한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보면 어느새 연맹 홈페이지에 접속해 과거 자료들을 뒤지고 있다. 그렇게 달뜬 마음으로 일찌감치 하나하나 준비를 해 나갔다. 나 장가가던 날에도 아침에 목욕탕에서 샤워 한번 한 게 전부인데, 그야말로 신부화장보다 더 세심하게 발끝부터 머리 끝 심지어 위 속까지 살피고 치료했다.
발 물집 문제 : 작년 횡단 때 아무런 대비도 없이 사흘 밤낮을 퍼 붓는 비를 맞다보니 온 발바닥이 다 떠버리고 물집이 터진 자리에서 다시 2중 3중으로 물집이 잡혀 유리파편 위를 걷는 듯 한 끔직한 고통을 맛본 터라 무척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5월 천진암대회 때, 인터넷 자료 중에서 보았던 대로 양말을 신고 비닐봉지로 발을 감싸고 다시 양말을 신어봤다. 그런데 몇 발짝 걷기도 전에 미끄럽고 양말이 벗겨져서 벗겨내 버렸다. 그리고 발가락이며 발바닥을 테이핑 하는 걸 몇 번 연습해봤다. 또 물에 취약한 무좀을 찾아내기 위해 발을 물속에 두어 시간 씩 담그고도 있어보고 굳은살도 정성스레 벗겨냈다.
왼쪽 발목 장경인대 통증 : 연습하다보면 자주 왼 발목과 장경인대에 통증이 있어서 가끔 근처 한의원을 다니다가 아무래도 찜찜해 참가 신청을 하기 전에 달리는 의사들의 김학윤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뛰는 데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다 하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복통 설사 : 빛고을 울트라 때부터 아프기 시작한 복통이 계속 돼 위 내시경을 해보니,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심해 계속 치료약을 먹은 후에 헬리코박터균 치료를 위해 대회 전 1주일 동안 약을 먹었다. 이 약을 먹으면 속이 꽤 거북하고 설사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약을 쉬지 않고 일주일동안 계속 먹어야 한다고 해서 한번 먹기 시작한 게 아까워 계속 설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먹었다. 그 결과 대회 전날 해남 숙소에서까지 속이 안 좋아 결국은 지사제를 먹었는데 계속 속이 더부룩하면서도 변은 나오질 않았다. 몸무게도 평소 때보다 3kg 정도가 빠졌다. 우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변비문제 : 밤낮 쉬지 않고 달리다보면 장이 운동을 하지 못해 수분은 다 빠져나가고 변만 똘똘 뭉쳐 변비가 생긴단다. 작년 횡단 후에 119 구급차에 실려 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관장약을 사다가 미리 예행연습까지 해봤다. 그런데 이번에도 중도 포기 후에 전주 모텔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에 변비약을 집어넣고 힘들게 힘들게 30분 여 만에 일을 봤다.
코스도 제작 : 선배분들의 경험담을 읽고 아이디어를 추가해 아주 그럴싸하게 제작했다. 부피도 아주 작은데다가 배낭 앞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내서 손에 쥘 수 있으며, 끈이 달려 있어 분실위험이 전혀 없다. 두 부를 만들어 하나는 광주에서 해남까지 태워준 김길원 선배한테 선물했다. 전에 코스도 제작 방법을 게시판에 올렸으니 많이 참고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먹거리 : 내가 준비한 특별한 먹거리 중 하나는 미숫가루다. 나는 평소에도 미숫가루를 좋아하는데다가 더위 속에서 먹고 싶은 건 물 밖에 없는데, 맹물 보다는 미숫가루라도 타서 마시면 그나마 탈수예방과 영양 섭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해서다. 미숫가루에 분말 포카리스웨트와 소금을 섞어 작은 봉지에 여러 개로 나눠 담아두었다가 봉지 주둥이로 병 주둥이를 감싸고 위에서 털어 넣으면 쉽게 들어간다. 그리고 물을 부어 흔들면 된다. 더위에 미지근해진 걸 먹을 수 있을까 해서 미리 연습 시 먹어봤는데 먹을 만 했다. 치즈도 탈수가 심하지 않을 땐 짭잘하게 먹을 만 했다. 준비한 육포는 받아들이질 않아 못 먹었다.
썬크림 : 고급 썬크림을 준비했는데도 첫날 발라보니 눈만 따갑고 땀과 물로 씻겨져 효과 없는 사치다 싶어 그만 두었다. 덕분에 이틀 만에 온통 빨갛게 익어 허물이 볏겨지고 있다.
기타 모자 옷 신발 등등 하나하나 무척 신경 써서 준비했지만 일반적인 것들이니 생략한다. 그리고 준비하지 못한 것 중에 남들을 보니까 꼭 필요하다 싶은 건 어디서든 잘 때 필요한 안대는 꼭 챙기는 게 좋을 것 같다. 또 CP에서 수면을 취할 때 입을 수 있는 두툼한 추리닝 한 벌도 챙기면 좋을 것 같다.
대회 일주일 전 부터는 매일 일기예보를 검색하는 나를 보고 각시 왈, 짚신장수와 우산장수 두 아들을 둔 어미처럼 비가 와도 걱정 해가 떠도 걱정이란다. 비가 올 땐 발 물집, 무더위엔 탈수증과 쓸림 현상 등의 문제들을 보고 듣고 했기 때문에 하는 걱정이다.
가장 중요한 연습 : 결과적으로 작년 횡단을 첫 도전에 성공한 것이 이번에는 최대의 독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세운 철칙이 하나 있었다. 정말 밥 먹고 잠 잘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몇몇 사람을 빼고는 누구나 좀 부지런해지기만 하면 가능한 한 달 200km 정도의 운동량만을 유지하려 했다. 200km라면 일주일에 3번 정도의 배드민턴이나 축구 또는 등산을 할 수 있는 시간 정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딱 이만큼의 시간만을 할애하면서도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또 프로 선수도 아니면서 한달에 5~600km씩 달린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균을 크게 벗어난다는 생각과 내 기량이 아직 그만큼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자재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오만이고 오판이었다. 물론 천부적인 소질과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이정도의 연습으로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 결과 예기치도 못했던 고관절 통증이 30km도 못 가서 발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회 2주 전에는 지맹으로부터 대회 출정식과 황송하고 염치없는 격려금까지 받았다. 그리고 대회 전에 지맹 회장님의 따뜻한 응원 전화는 성공의 보증수표라도 받은 양 힘이 솟는다. 아! 이것이 응원의 힘인가? 이런 응원을 세상 처음 받아보는 것처럼 신선한 감동과 함께 대단한 사명을 띤 용사처럼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