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나를 찾아서

나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 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기

늘근피터팬 2010. 7. 28. 15:38

나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 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기. 

2009-03-15. 서울국제마라톤. 기록 3:52:32.

  “1:0으로 지고 있으면서도 변화 없는 전술로 단조로운 게임만 하다가,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30초 만에 오버헤드킥으로 성공시킨 황금 같은 동점골....

  흥분과 감격, 만감이 교차하는,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황홀한 첫 경험을 어찌 몇 마디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싶다. 근래 십 몇 년 사이에 나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인 듯하다. 백두산 웅담에 뉴질랜드 사슴뿔을 먹은 들, 태국 골프 관광에 백말 흑말을 타본 들(다수의 속물근성에 젖어있는 남자들의 심리와 표현을 빌리자면), 이보다 더 큰 선물이 될 수 있으랴 싶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몸은 1m쯤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흥분이 덜 가셨다. 몇날 며칠을 술에 젖어 살았다. 나 자신이 너무 대견스러워서 한 일주일 술이라도 실컷 선물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이렇게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워 보였던 게 몇 번이나 있었던가?

 “어떤 일에 영원히 미치지는 못해도, 그 순간만이라도 제대로 미쳐봐라.”

“세상 최고의 적은 너 자신이다. 단 6개월만이라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자신과 싸워봐라.”

  이 말들은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수시로 되뇌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 말들처럼 행하다보면,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거나 거대한 건 못 이룰지라도, 어느 정도의 일들이야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말들을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200% 증명해 보였다고 자부한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과 설렘인가? 드디어 그 두렵고도 흥분되는 날이 밝았다. 어제 밤엔 평소보다는 이른 10시 30분경에 잠자리에 들었다. 긴장 때문인지 그렇게 썩 깊은 잠을 자지는 못한 것 같다. 자다 깨어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도 안됐다. 다시 잠을 청해 좀 자다 깨어보니 3시 58분. 잠시 후 4시에 알람 소리를 들으며 일어난다. 배운 대로 하자면 3~4시간 전에 식사를 하는 게 좋다고 했으니까, 먹는 것부터 해야겠다. 인절미 몇 개와 우유에 시리얼을 간단히 말아먹는다.
 
 세면을 하고, 양 젖꼭지에 밴드를 붙이고, 얼굴에 썬크림을 바르고, 사타구니에 바셀린을 바른다. 거실에서 간단한 몸 풀기를 해본다. 오랫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겨우 밥 먹고 출근하기 바쁘다보니,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화장실 가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탓에 마라톤 대회장에 가서야 큰일을 보고 싶어지는 게 꽤나 고역이었다. 더구나 이번 대회는 참가자도 많아 쉽게 일도 볼 수 없을 거란 걱정 때문에, 집을 나서기 전에 큰일 보기 위해서이다. 다행히 집을 나서기 전에 시원하게 해결했다. 이정도면 제법 요령이 좀 갖춰진 것 같지 않은가?

  이른 새벽 동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대회장에 도착해 걸으면서 회장님이 식이요법 잘 했느냐고 묻는다. “월화수 사흘은 거의 쇠고기만 먹다시피 했는데, 밥을 조금씩은 먹어서 그런지 그다지 질린 줄을 몰랐다.”고 하니까, 옆에서 듣던 은숙 선배도 맞장구를 치며, 자기도 고기 체질인 모양이란다. 하여튼 낮에 출근해서는 자주 가는 식당에 등심을 한 근 사다놓고 고기만 구워 달라 해서 먹었다. 그렇게 사흘을 먹으니까 정말 몸무게가 2kg정도 빠졌다. 수요일 날은 정모 때 뛰고 와서 웃옷을 벗는데 노린내가 훅 풍기는 게,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목금토 사흘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다 보니, 과식을 안 하려 했는데도, 바로 몸무게가 원상복구 되어버렸다.
 
  하여튼 이번이 처음이라는 긴장감도 있지만, 저번 2월 22일 ‘챌린지레이스’에서 혼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충실하게 준비하려 애썼다. 오늘을 대비해서 지난 1,2월에 4~5회에 걸쳐 25~35km의 중거리 훈련을 했었다. 어두운 새벽부터 뛰기 시작해 해 뜰 녘이 되면 바람까지 불면서 영하 8도까지 내려가곤 하였다. 같이 뛰는 은숙 선배의 뒤로 묶은 머리카락으로 흐른 땀이 고드름이 되어 뛰면서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곤 하였다.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멋진 모습으로 인상 깊게 남아있다. 손이 얼고 귀가 얼어붙는 이 새벽의 추위 속을 달리며 다들 하는 말이, 누가 시킨 거라면 죽어도 못할 거라고 한마디씩 한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서너 시간씩 달리기를 하는 것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싶다.
 
  하여튼 나름대로 연습을 충실히 했다고 자부하며, 마지막 중장거리 훈련 삼아 2월 22일 ‘챌린지레이스’에 임했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여러모로 컨디션도 좋게 느껴졌다. 그런데 예전 경기에서 물이나 음식을 조금만 많이 섭취하면 배가 아파서 고생한 기억들이 있어서, 물으니까 오명호 형님이 “우리는 30km까지는 무급수로 뛴다”고 하셨다. 경험이 부족한데다, 이때까지는 하던 일들이 바쁜 관계로 마라톤 관련 서적이나 자료들을 그다지 보지 못했기에, 개인적 차이의 견해를 보편적 경험론으로 받아들이고, 거의 무급수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수분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마라톤의 벽이었던지, 긴 언덕을 올라와 월트컵 공원 울타리를 지나 1km 남짓 남은 평지에서 스피드를 좀 내려니까 갑자기 스펀지를 밟듯이 아득해지면서 빙글빙글 도는 느낌과 함께 어지럼증이 생기고 속이 매슥거렸다. 몽롱함 속에서도 며칠 전 일요일 새벽에 호수공원에서 중장거리 연습할 때 같이 달리던 경찰분의 말이 떠올랐다. 청년시절 마라톤 선수로 활동할 때, “출전 티켓을 놓고 서로 경쟁시키다보면, 젊은 혈기에 죽는지 사는지 모르고 뛰다가 소가 거품을 내뿜듯 입으로 거품을 내뿜으며 혼자서 빙글빙글 돌다가 논에 머리를 처박으며 꼬꾸라진다.” 고...... 그러면서 몸에 이상 신호가 느껴지면 즉시 달리기를 멈춰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뛰기를 포기하고 한참을 걸었다. 걷다 보니 마승창 형님이 추월해가며 “왜 걷느냐”고 하셨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3시간 안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골인지점 7~800m를 남겨두고 전력질주를 하였다. 그러나 너무 늦어 아쉽지만 32km를 3시간 21초에 골인했었다.

  “까짓 거 대-충 하면 되겠지.” 하다가 큰 코 다친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챌린지레이스’의 값진 경험이 없었다면 아무리 첫 풀코스 도전이라 해도 이렇게 고지식하게 준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김인기 선배님의 “몸은 기억해 줄 것이다”라는 말처럼, 몸과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한 연습하고 준비하게 한 아주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일주일 전 일요일에는 써브3의 값지고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회장님의 지도 아래 인터벌 훈련을 마치고 보양식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 회장님 조언대로 일주일간을 충실히 식이요법을 해 왔던 것이다. 오늘 멋지게 완주를 하고나서, 다정하게 친구로 맞아주어 마라톤과 화정마라톤클럽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회장님께는 꼭 술이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다.

  이제 배낭도 보관소에 맡기고 출발대기 그룹에 끼어 몸을 풀고 있다. 내일 모레 17일이면 마라톤을 시작한지 딱 6개월이 된다. 나는 평소에 지론처럼, 어지간한 일들은 단 6개월만이라도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좀 더 의미 있는 결과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내심 4시간 안에 들어오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연습 때 25km 이상 되면 속도가 떨어지면서 고관절의 통증을 여러 차례 경험 한데다가 마의 35km이상은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확신하거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권순민 형님이 4시간에 맞춰 페이스메이커를 해준다고 하셨다. 권오기 형님은 무리일 거라며, 후반에 퍼질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란다. 권순민 형님의 말씀이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실망시킬까봐 부담도 되었다.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뛰다보면 무리하게 되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정모 연습 때 돌아오는 길에 조금만 속도가 빨라지면 숨이 차서 처진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하고 보니까 초보자라면, 많은 실전 경험자의 페메는 무조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연습이 좀 많든 적든 힘이 남아도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육체적 한계와의 싸움인데, 혼자 하는 것 보다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훨씬 더 끈기를 발휘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좀 더 나은 결과는 자신의 빛나는 전통이 되고 기준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완주를 하고나서 생각해 보니까 보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권오기 형님의 견해가 객관적이고 타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오기 형님은 평소 자주 연습을 같이 하였기 때문에 나의 지구력이나 스피드, 숨소리 등 능력치를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나이나 경력 등을 따져볼 때, 아직 4시간은 무리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반면에 권순민 형님은 내가 힘들어하는 연습상황을 별로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간의 몇몇 결과와 꾸준한 연습량, 그리고 약간의 끈기를 높이 평가해 주신 것 같다.

   이제 내 몸은 작은 지류를 돌아 도도하게 흐르는 큰 강을 만난 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남대문시장 앞을 지나는데 순민 형님 아는 분들이 응원을 해준다. 사무실과의 거리가 300m도 안 되는 을지로를 뛰노라니, 일 때문에만 오가던 이 길을 이렇게 자신 있게 뛸 거라는 것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이나 했었나 싶다. 이제 몸이 좀 풀렸는지 한결 부드러운 느낌을 받으며, 을지로를 돌아 청계천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 후반이 걱정된다.”고 순민 형님한테 묻는다. 순민형님 대답이 숨소리나 상태를 보니 괜찮다고 걱정 말란다. 그리고 후반을 대비해서 초반에 약간은 시간을 벌어놔야 한단다.

  순민 형님은 뛰면서도 계속 피난 대열에 헤어진 ‘님’ 찾듯 천 건너편만 바라본다. 명호 형님을 보고 “오명호 파이팅”을 외친다. 나도 따라서 “오명호 파이팅”을 복창한다. 또 한참을 달리다 보니 “김영민 파이팅”을 외친다. 나도 따라 “김영민 파이팅”을 복창한다. 옆에서 뛰던 사람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보이냐고 묻는다. 순민 형님 왈 “내 식구니까 보이죠.” 하고 대답한다. 참으로 맑고 순박하다는 느낌에 내 가슴까지 따뜻해져 온다. 무심히 달리고 있는데, 조회장님이 달려와 사진을 찍어주며 응원을 해준다.

  어느덧 종각을 돌아 종로를 달리고 있다. “만나면 좋은 친구.... ”라는 광고 멘트가 생각나게 하는,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해주는 친구 꽃숙이와, 카메라 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그 신랑 조회장님 내외가 또 응원을 해준다.

  종로를 벗어나 20km 안내판이 보이는데, 벌써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회장님 조언대로 준비해온 아스피린을 먹으려고 꺼내어 까려다가 장갑 낀 손에 미끌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허망함을 쵸코파이 한입과 물로 달래는데, 순민형님은 간식이 있는데 마다 두 손에 들고 많이 드시는데, 뛰면서 거북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조금 전에 25km지점을 지나며 물은 마셨는데도 조금만 가면 인기 선배가 꿀물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말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군자역을 우회전하자 인기 선배 내외가 꿀물을 건내며 응원을 해주시는데, 제일 반가운 속내는 몇 초 동안이라도 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달리다가 순민 형님이 소변을 보고 온다고 뛰고 있으란다. 스피드나 체력이 되는 분이라 금방 따라 붙는다. 그런데 이제 잠시라도 내 눈에 순민형님이 안보이면 복잡한 시장바닥에서 엄마 손을 놓친 아이 마냥 불안해진다. 초반에 내 능력 이상으로 오버했다는 느낌과 체력 저하를 느끼면서 순민 형님 없이는 도저히 골인을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32km지점을 지나면서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좀 힘든 기색이 보여서인지 순민형님은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위로한다. 하지만 초등학생한테 하는 거짓말처럼 별 위로가 되지 못한다. 

  형님은 길거리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다가가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나도 따라 해보란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500m는 훌떡 지나간다고...... 나도 형님 뒤를 따라가며 손을 뻗어 응원하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해봤다. 아 그랬더니 이게 왠일인가? 저 사람들의 기가 나에게 전달되듯 힘이 솟는 느낌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소음으로 들리며 더욱 피로하게 만든다고 느껴졌는데, 손뼉을 부딪치며 즐기자니 한결 가볍고 쉽게 나아가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마의 35km지점 잠실대교가 바라다 보이며,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 홍업의 선배님과 황정연 총무님의 모습이 보인다. 꿀물을 받아 마시며, 잠시 서서 쉬고 나니 또 한결 가벼워진다. 단 몇 초를 서서 쉬는 것이 어떤 보약보다도 값지게 느껴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몇 초처럼 시간의 소중함(시계를 보면서 1분을 한번 세어보아라.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을 느낄 것이다)을 잊지 않고 산다면 참 값진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꿀보다도 단 몇 초를 쉬게 해준 자원봉사를 해주신 회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잠실대교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오른쪽 발바닥 앞부분이 마비된 것처럼 감각이 없다. 나의 마라톤 멘토께 들은 말이 생각난다. 그분 자신도 뛰다보면 발가락 하나가 저려오는데, 발가락을 오무리고 뛰다보면 통증을 잊어버린다고.... 그리고 누구나 조금씩은 아픈 곳이 있기 마련인데, 너무 핑계대지 말고 극복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도 발가락을 움직여보며 뛰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해본다. 이제 양 고관절이 다 닳아버린 듯 아파서 잘 돌아가질 않는다. 아 이것이 마의 35km라는 거구나 싶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35km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그 이후부터는 제정신으로 달린다.”라는 누군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말로 35km까지는 주로 거리만을 생각했다면, 35km를 넘어서며 고통이 커지자 머릿속까지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옆에 형님이 없었다면 벌써 걸었을 것 같다. 형님은 뛰다가 의료봉사 요원이 있으면 스프레이를 뿌려달라고 몸을 내민다. 나도 두어번 따라서 해봤다. 이거야말로 걷거나 쉬는(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것이 아니라고 교묘히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도 꿀 같은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이제는 내 영혼까지도 형님한테 맡겨 놓은, 오로지 발을 움직여야하는 임무만 존재하고 멈출 수 있는 자유나 권리를 박탈당한 노예처럼 묵묵히 달린다.

  드디어 40km지점을 넘어선다. 4시간이 되려면 20분 이상 남아 있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이제는 다리에 쥐가 와도 기어서라도 들어갈 것 같다. 이제 한가지 걱정이 생긴다. 내 나이 정도면 짧게 잡아도 1~2년을 걸릴 거라는 써브4를 하고나면, 당분간 기록 까먹을 일 밖엔 없을 것 같다고...... 이미 속도는 많이 떨어진 상태라 그런대로 참고 달릴 만한데 “이제 조금만 걸으면 안 될까요?”하고 형님한테 애교를 한번 부려본다. 그랬더니 갑자기 형님이 다리에 쥐가 난다며 잠시 서서 다리를 푸신다. 골인을 하고나면 제일 먼저 순민 형님을 한번 업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골인지점 1km 정도를 남겨두고 은숙 선배가 추월해간다. 먼저 가라고 응원을 해준다. 은숙 선배와 내기까지 했지만, 비록 나보다 기록이 좋을지라도 부럽지 않다. 오늘은 나 자신이 너무 대견스럽기 때문이다.

  골인을 앞두고 마지막 고민이 생겼다. 순민 형님한테 혼자서 들어가시라니까, 무슨 소리냐고 역정을 내신다.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니 형님한테 미안하기도 한데다가, 자기 배반 같지만 기록이 아까워서 들어가기로 했다. 운동장 입구에서 반가운 친구 꽃숙이가 응원하는 게 보인다. 드디어 골인. 이렇게 나의 첫 경험은 끝이 났다. 어느새 친구 꽃숙이 달려와서 포옹을 해주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준다.
 
아 느낌이 조금 온다. 아직은 오기와 끈기가 살아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