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 일기

3D보다 힘든 인간관계

늘근피터팬 2010. 8. 5. 20:08

3D보다 힘든 인간관계.

  직업 활동을 함에 있어서 가장 힘들게 하는 대상이나 경우를 들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 즉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3D업종이니 인기업종이니 하는 식으로 많은 직업들이 선호 또는 기피의 대상으로 나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일자리든 갖고 나면, 3D보다도 더 힘든 것이 일의 과정에서 부딪치는 ‘인간 관계’이고, 아무리 유망 인기업종이라 해도 ‘인간’ 때문에 견디기 힘든 최악의 직장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군 경험자들은 비슷한 경우를 접해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치사하고 유치한 사적인 감정과 악취미의 대상으로 자신을 수시로 괴롭히는 고참 때문에 이판사판 끝내버리고 싶다는 충동심 말이다.
  그러니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자급자족하며 살지 않는 이상, 직업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 관계’라는 요소는 일이나 직업이라는 본질보다도 중요한 핵심 열쇠(키워드)인 것 같다.

  첫날 둘째 날은 콘크리트 깨고 무거운 구조물들 철거하고 폐기물들 치우느라 먼지도 많이 먹고 땀도 많이 흘리고 정말 힘들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셋째 날은 오전에는 그리 힘든 줄을 모르다가 오후에 모래를 버리느라 1시간 정도 힘들었다. 그리고 넷째 날인 오늘은, 천장 공사를 하기위해 홀로 온 목수를 보조해주다보니,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꽤나 묘하고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직 이쪽 인테리어 계통 일의 유형이나 생리를 잘 모른다. 예전부터 타일을 붙이는 타일공이 따로 있다는 건 알았지만, 셋째 날은 미장공들이 와서 콘크리트를 치는 것과 오늘 천장 일은 또 다른 목수가 와서 일을 하는 것이 조금은 생소했다. 따라서 나에겐 사장(업자)이 있지만, 그날그날 일당제로 오는 기술자들의 일을 돕는 조수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 온 목수는 나보다는 몇 살 많아 보인다. 그런데 일을 돕는 나에게 꽤나 통박을 많이 한다. 내 나이도 낼모레면 50이지만, 아직도 눈치 있게 일을 처리하고 행동하는 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 나이에 이런 일을 시작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이 목수 양반 짜증 섞인 말투로 통박을 자주 한다. 내가 초보자라서 돕는데 좀 서툴기는 해도, 그렇게 눈치 없거나 굼뜨지 않은데도 말이다. 또한 처음 만난 사이에 나는 시종일관 예의바르게 행동했는데도 말이다. 아마 남의 꼴을 잘 못 보는 사람이던지, 아니면 초보자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통박이 계속 이어지자 듣는 내 기분도 묘해지며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아 참 아저씨 알았어요.” 아니면 “아저씨 저한테 뭐 화난 거 있으세요?”

이런 말들이 입에서 튀어나오려 하는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전혀 언짢은 감정이나 느낌이 없는 사람처럼 내색을 않고 참았다. 아니 즐겼다.

   오래전에 충무로에서 인쇄 일을 할 때의 일이다. 오다가다 길거리에서 고교 동창을 만났다. 이 친구는 컴퓨터 한 대 들고 이 사무실 저 사무실에서 더부살이 하면서 프리랜서로 인쇄편집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지 일이 많지 않아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당시 내 사무실에는 직원이 몇 명 있었는데, 이직이 잦았었다. 내 사무실에 수시로 드나들던 친구는 빈자리를 보고 “그 월급 나 줘라.” “그 월급 나 줘라.”를 읊어댔다. 그런데 이 친구의 괴팍한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라, “그냥 친구 사이로 만 지내자.”고 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함께 있기로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었다.
  “네가 알다시피 내가 네게 웃기는 유세나 떨고 무시하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지. 그렇지만 과장님과는 수시로 부딪칠지도 모르겠다. 만약 부딪칠 일이 있더라도 속이 없는 사람처럼 허허 웃어 넘겨버려라. 한신이 가랑이 밑을 기어가듯이 도 닦는 기분으로 웃어 넘겨버린다면, 너 스스로 한층 성숙해질 것이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너를 다시보고 칭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절대 성질 안 내는 것 하나만 약속하자.”
  당시 직원 중에 우리보다도 나이가 열 살 이상 연상인 여자 과장님이 계셨는데, 일처리를 잘 하는 만큼 성격이 꽤나 급했다. 그래서 이 친구와의 마찰이 우려돼 여러 번 다짐을 받고 함께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 성격 바뀔 수 없는 것인지, 그릇이 그만큼 밖에 못 되는 것인지, 첫날부터 마찰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인쇄 밥을 오래 먹었을망정 로마에 왔으면 로마 인쇄 규칙도 익히고 숙지해야 할 것 아닌가? 따라서 과장님이 업무를 알려주려 하면.
   “나도 사장도 해보고 뭣도 해본 사람이라 다 알아요.”라며, 노인내 같은 느린 말투로 오히려 선생노릇하려 한다. 그러니 성미 급한 과장님 복장 터져서 못해보겠다며, 사장님이 알아서 하라고 손발 들어버린다.

  이 친구는 인쇄실로 가서 동갑내기 인쇄 기사에게 사람을 너무 무시한다는 투의 푸념을 늘어놓는다. 안되겠다 싶어 오후에 일하다 말고 셋이서 식당에 가서 술을 마시며 얘기했다.

 “야. 그렇게 신신당부 했는데, 그 정도도 못 참니?”

  “야 ㅆㅅㄲ야! 내가 인쇄 쌩 초짜냐? 곧 죽어도 사장이었던 사람인데, 뻔히 아는 얘기를 해대니까 짜증 안나니?”

  웃다가 배꼽 빠져 죽을 노릇이다. 홀로 더부살이 프리랜서도 ‘사장’ ‘사장’ 불러주니 사장이구나. 생각 참 자유롭다.

  “좀 안다 해도 때론 모른 척하고 들어줄 순 없니?”

  “야. ㅆㅅㄲ야! 너나 해! 나는 그 짓 더러워서 못하겠다. 당장 찢어지자. 찢어져.”

  오래전 얘기지만 내가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허물없는 친구 사이라 해도 꽤나 심한 ㅆㅅㄲ야! 라는 욕을 수시로 썼으며, 너무 비상식적이고 이해심이 없었다. 욕 짓거리가 입에 달려있는 이유는 옆에 동갑인 인쇄 기사가 있으니, 그렇게라도 친구에게 아쉽거나 꿀릴게 없다는 식의 자기 과시를 하고 싶은 열등감(컴플랙스)이 작용한다 싶었다. 그래서 소인배의 행동일망정, 욕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면...... 하고 별로 개의치 않았었다. 그러나

  “야, 우리 한가하게 장난삼아 만난 것 아니고, 일이며 직업이란 존엄함을 가지고 서로 심사숙고 끝에 만났으니, 사소한 일로 애들 소꿉장난 같은 가벼운 처신은 삼가자. 정말 헤어지는 날 까지 함부로 헤어지자는 말은 절대 하지말자. 함부로 가볍게 ‘찢어지자. 찢어지자.’하면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해야만 된다.”

  이렇게 달래고, 다짐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일주일여 만에 다시,

“야. ㅆㅅㄲ야! 찢어지자. 찢어져.” 하기에 “그래. 찢어지자.” 하고 그 날 부로 쫑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자기가 먼저 있게 해달라고 사정해놓고, 모난 성격에, 아무 짝에도 필요 없는 못난 자존심 내세우다가, 애들 장난같이 가벼운 처신이란......


  아무리 천한 일이라 해도 배움은 필요하고, 배우려다 보면 텃세도 있을 수 있고, 무시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왕년에 사장 안 해본 놈 없고, 약간 뻥 좀 섞으면 군대에서 투스타 쯤의 계급에 간첩을 한 꾸러미쯤은 대부분 잡아봤을 것이다. 이런 허망하고 전혀 도움도 안 되는 과거 운운하며 위안 받으려 한다면, 피차간에 피곤해지기만 하고, 가는 길도 훨씬 더디어 지거나, 중도에 그만 둬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꼼꼼히 배워야 한다. 따라서 젊은 학생의 자세로 진지하게, 군대 훈련병의 심정으로 긴장하고 민첩하게 행동하며,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일을 하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 하는 식의 내 의견을 함부로 말하려 하지 않고, 꼭 필요한 업무 외의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으려고 애 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쉽게 배우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하찮은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아 흐름을 방해하고, 역으로 선생을 가르치려 하는 나쁜 습성들 때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