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나를 찾아서

2014 한반도종단 패망기(3) - 닭대가리의 예정된 수순

늘근피터팬 2014. 7. 18. 15:11

요즘 들어 진행하는 일들이 지지부진하니 시간 가는 게 더욱 초조하다. 그러니 마냥 한가롭게 달리기놀음에만 빠져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실패하면 깨끗이 접어버린다고 다짐하며 종단에 임했다. 이러한 나의 성향은 과거에도 목숨을 걸다시피 뭔가에 빠져 있다가도 작별할 땐 뒤도 안돌아보고 끝내버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조금 살아보니 하찮다고 느꼈던 과거도 인생의 소중한 한 과정이이기에 매정한 단절을 반복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에 대한 충격요법으로 다시 절연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접수는 했지만 왼쪽 비골 부상부위는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대회 직전까지도 한의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고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살이 익는 불볕더위인들, 태풍에 연일 폭우가 쏟아지는 최악의 날씨인들 엠블런스에 실려 가기 전에는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고자 다짐하며 대회에 임했다.

 

그렇게 대회는 시작되었고. 어쩌면 예정된 수순처럼 실패했다. 지독한 경기란 건 설명이 필요 없지만, 참가자 전원이 완주해도 놀랄 것이 없을 만큼 준비되고 검증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나는 아니었다 싶다. 실력도 안 되는 주제에 오랫동안 쉬다가 연습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 그러고도 예전 과훈련의 혹독한 경험 때문에 급속히 운동량을 늘이지 못했다. 예전에 내 손으로 직접 페메와 같이 연습을 해보지 않고는 페메를 부탁해선 실패하기 쉽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러고도 한 번도 같이 달려보지 않은 도희 형님께 따라가겠다고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도희 형님께 대단한 실례를 했다는 죄송한 마음이다. 적당히 칼있으시고 자상한 선생님같은 형님께 요즘 쉽게 포기하는 믿을 수 없는 내 끈기를 의존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긴 거리는 오로지 내 정신력이 살아 있어야 하고 또 동반자와 스타일이 비슷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지켜보던 여러 고수들의 예언대로 고장이 났다. 설마하니 종단에서까지 오르막을 뛰어 올라가실 줄은 몰랐다. 이튿날부터는 아무래도 고장이 나고 제 명대로 못 살 것 같아 따로 뛰겠노라고 말씀드렸다. 내가 달리기는 못해도 직업상 며칠씩 뜬 눈으로 날을 세워본 경험이 많은지라 잠 문제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왜 이리 잠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사흘째 되는 날 출발하자마자 졸음이 쏱아지는데, 넘어지고 부딪칠 것 같아 도무지 걸을 수도 뛸 수도 없다. 수차례 누워 있기를 반복하다보니 맨 꼴찌가 되었다. 23km5시간 걸린 끝에 시간을 좀 만회해야지 하고 한참을 뛰었다. 그리고 235km 즈음부터 갑자기 왼쪽 아킬레스건과 오른쪽 앞 허벅지에 통증이 왔다. 침으로 쪼아대고 피를 빼내니 왼쪽 아킬레스건은 견딜만하다. 앞 허벅지는 평소 오르막 훈련을 별로 하지 않고 제주 대회에서 오르막을 뛰면서 경험해 봤기에 걷다보면 풀리려니 생각하고 맨 꼴찌로 계속 걸었다. 250km 이후로 산을 오를 때는 통증 때문에 발을 들 수가 없어 손으로 들어 올려야 했다. 내리막에서는 힘이 가해지니 통증이 심해 한발을 질질 끌면서 내려왔다. 진통제를 먹어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시간이 촉박하니 아픈 발을 끌면서 게처럼 옆으로 한발로 뛰어보지만, 10m도 뛸 수 없을뿐더러 힘이 실리는 왼쪽 발의 부상부위 비골이 아파오고 낮에 부상을 입은 아킬레스건과 고관절도 아파온다. 어떻게든 313cp까지만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면 허벅지 통증은 가실 것 같은데 걷기도 불편하다. 죽어도 포기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부상당한 몸으로 50km를 왔는데, 남은시간 5시간 30, 앞으로도 30km를 더 가야 하는데 평소 때 같으면 걸어서도 충분한 시간이지만 걷기도 힘든 이 몸으로는 시간 안에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절망적이다. 간절하게 바랐던 만큼 처음으로 점프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지나가는 자전거라도 붙잡고 10km만 따라가자고 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시간 초과하더라도 cp까지는 들어가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성공 외에는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결국 285km에서 멈췄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그것도 회장님께. 회장님이 직접 중간 중간에서 봉사하시랴 각종 전화 받기에도 바쁘신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마누라 말고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회장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즉석에서 영원히 작별인사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cp에 도착해 차마 가방을 찾으러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경기 기간 내내 차를 몰고 다니며 애쓰신 오세원님께 부탁해 가방을 찾아 끌고 다른 곳으로 자러 간다니까 회장님이 왜 그리 속이 좁냐고 역정이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 감정 숨기고 싶지 않다. 그렇게 가방을 끌고 나와 길거리에서 한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음날 눈을 떠서도 멍하니 TV만 보며 전화들도 받지 않고 끓어버렸다. 그런데 주자들 출발시키고 난 회장님의 전화는 반갑다. 밥 먹자고 해서 나갔더니 영광의 얼굴 세 분이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