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 일기

주유[注油]하듯 먹는 밥

늘근피터팬 2015. 5. 18. 17:56

주유[注油]하듯 먹는 밥
  건축현장에 출근하려면 거리가 먼 사람은 4시경부터 일어나야 하고 가까운 사람도 5시경에는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잠시 뜸들일 여유도 없이 세수하고 옷 입고 차를 몰고 지정 식당으로 간다. 식사는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씹을 틈도 없이 몰아넣는다. 꼭 전쟁 중인 병사들 밥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식사를 마치고 물로 입 한번 헹구기 무섭게 다시 차를 몰고 현장에 도착해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7시부터 시작되는 일과시간을 맞추려면 조금이라도 꾸물거려서는 화장실 한번 다녀올 틈도 없다. 점심 역시 훈련병들처럼 쫓기듯 식사하기는 마찬가지다. 식당에 들어오는 데로 식사들을 시작하지만 5~10분 정도면 많은 사람이 전부 식사를 마친다. 그래야만 20~30분이라도 낮잠을 즐기며 피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유나 즐김이 배제된, 생명 없는 자동차에 주유하듯 한 식습관을 접하노라면 ‘빨리빨리 공화국’의 표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빨리빨리’가 단기간 내에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웠을망정,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는 듯한 씁쓸함 마저 든다. 그리고 일과가 끝나고 녹초가 되어 숙소에 돌아오면 씻기도 귀찮아 한참을 엉거주춤하고 멍한 상태로 있곤 한다. 그러니 5년 취업비자로 들어와 일하고 있는 연변 사람이 올 시월에 돌아가면 다시는 오기 싫단다. 아무런 재미나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시계추처럼 일만 하는 게 지겹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