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의 ‘맛’ ‘멋’
마라톤의 ‘맛’ ‘멋’.
마라톤 연습을 여럿이 함께하면 경쟁심과 상호 의존성 때문에 끈기·지구력·속도 등의 효율은 높아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되지 않은 누군가가 따라오면 속도 조절이나 멈추고 싶은 본능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닌가 싶다.
따라서 속도나 지구력 등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달리고 싶을 때는 혼자 달려보는 것도 여러 가지 특별한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 내가 생각하는 마라톤의 이미지는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대화’ ‘내 심연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망원경’ ‘내 영혼의 고고한·고요한 비행’ 등등...... 이처럼 ‘마라톤은 나를 찾아가는 긴 수행’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여 2일 낮에 혼자만의 낭만주를 가졌다. 낮 1시 40분에 화정도서관을 출발해 제주가든을 지나 흥도동 사거리에서 좌회전 해 원흥지구 옆 창릉천을 끼고 달려 화전교를 지나 화도교에 도착한다. 이쯤이 대략 6km 이상 될 듯하다. 여기서부터는 눈이 녹지 않은 자전거 길을 따라 달린다. 한참을 달려 제2자유로 밑에 도착하니 많은 모터크로스 동호인들이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다. 넓은 습지에 흙을 쌓아 올려 구불구불 길을 만들어놓은 연습장이 있기에 이 시설을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자신들이 추렴해서 만든 거란다. 이 연습장에서 오토바이로 점프하고 회전하고 달리면서 경주를 하고 있었다. 나도 평균보다는 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달리기에 비해서는 너무 위험하고, 운동 신경이 강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선뜻 하고 싶진 않을 듯싶다. 또 돈도 참 많이 들어갈 것 같다. 어쩌면 이들은 약간은 과격한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이라서 자전거는 시시해서 못 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인적 없는 고요한 눈길을 달리노라니, 그리운 젊은 날의 영상들이 햇볕이 반사되는 눈밭 위에 부신 빛으로 아련히 펼쳐진다. 그렇게 10km 지점은 될 듯한 방화대교 밑을 지나 한강으로 접어든다. 강은 얼음으로 뒤덮인 영하의 날씨지만, 따스한 햇볕과 바람 없는 탓에 그리 추운 줄은 모르겠다.
공항철도 다리를 지나노라니 민속동호회 회원들이 방패연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릴 적 연을 메던 방식과는 다른지, 연이 하늘에서 팽팽하게 앞만 보고 있는 연은 하나 뿐이고 나머지 몇 개의 방패연은 실을 잘못 묶은 것처럼 하늘에서 휘적휘적 날면서도 떨어지진 않는 게 신기했다.
다시 한참을 달리노라니 모형비행기 동호인들이 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계속 달려 가양대교를 지나 월드컵경기장 옆 강변에 도착하니, 중국에서 흔히 보았던 두 줄로 조종하는 대형 연을 날리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한사람은 조종을 잘 하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서툴다. 지금이 중국연 문화를 수입하는 초창기 아닌가 싶다.
오는 아침 탄약고 훈련하러 갔다 오면서 들은 라디오 대담프로에 나온 외국인이 서울의 가볼만한 곳으로 ‘낮의 한강’을 꼽던데, 역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볼거리와 함께 다양한 사람, 여가 문화 등을 느낄 수 있겠다 싶다.
총 4시간 20여분이 걸릴 정도로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중간 중간 한눈도 많이 팔았지만, 새해 첫 달리기로 30km 이상을 달리고 나니 왠지 2011년이 나의 해가 될 것 같다는 희망찬 기대감이 눈처럼 눈부시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