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자전거 여행_18일차. 나라의 러브호텔
자전거 주행(총 거리) | 101.5 (1918.6) km |
주행 출발 ~ 주행 종료 | 7:00 ~ 22:00 |
출발지~도착지 | 아카시(明石市) ~ 나라(奈良市) |
날씨 | 오사카 비 개었다가 오후 나라 비 |
특이사항 | 산길에서 자전거 사고 |
고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1995년의 고베 대지진 아닐까 싶다. 메리겐 파크에 가니 붉은색 철골로 감싼‘고베 포트 타워’와 하얀 철골로 범선을 형상화한 ‘고베 해양 박물관’이 있다. 고베 관련 사진들을 보면 이 건물들이 밤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야경의 백미를 이루는 모양이다. 그런데 낮에 보니까 에펠탑이 처음 받았던 비판의 많은 부분을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옆에 지진의 흔적을 보존한 ‘메모리얼파크’에 가니 무너진 제방 조금 보존해 놓은 게 전부여서 시간이 아깝다. 고베는 일찍이 외국에 문호를 개방한 항구도시로 북쪽 산비탈에 위치한 기타노초 주변에 외국인 거류지가 있어 유럽 여러 나라의 건축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오사카는 일본 제2의 도시로 천하의 부엌이라 일컬어질 만큼 경제도시이다. 또한 물의 도시라고 할 만큼 강과 운하가 많다. 고베에서 오사카 간에는 도시가 거의 연결돼 있다. 인적 없는 교외를 달릴 때는 적적하지만, 지금은 시내를 달리려니 신호등과 사람, 자전거를 피하느라 시간이 지체된다. 도쿄의 긴자에 비견할만하다는 신사이바시스지 상점가(心斎橋筋商店街)로 달려간다. 손을 뻗으면 물이 닿을 것 같이 지면과 수면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은 일직선의 수로 양편으로 일본 최대의 먹자 거리 도톤보리(道頓堀)가 조성돼 있다.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마어마한 공사인원을 동원해 거대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다. 겹겹이 있는 해자를 지나 천수각(天守閣)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성벽이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다이묘들이 도쿠가와 가문에 충성경쟁을 하느라 각지에서 옮겨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위 수준이다. 성 안에는 칼을 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상이 있는데 기분이 참 착찹하다.
나라에는 담징의 금당벽화로 유명한 호류지(法隆寺)가 있다. 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금당이 있다. 또한 익산 미륵사지와 비슷한 5층 목탑과 백제 성왕이 보냈다고 전해지는 일본 국보 중의 국보라는 백제 관음상도 있다. 오사카에서 나라의 호우류사를 가려는데, 도보길로는 시기 산(信貴山)을 넘어야 하는데 25km이고 차도로는 40km이다.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땀 한번 흘리자는 기분으로 산을 넘기로 한다. 산으로 접어드니 차는 다닐 수 없는 좁은 오솔길이 나오는데, 경사가 심해 밀고 오르기도 힘들다. 땀으로 목욕을 하며 힘들게 오르고 보니, 찻길이 나오는데 또 한참을 밀고 타고를 반복해야 하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힘겹게 고개 마루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계속되는데, 빗발이 점점 굵어져 안경을 가린다.
순간 아뿔싸,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수도관을 묻기 위해 파놓은 듯한 아스팔트를 가로지르는 20cm 정도의 홈에 걸려 자전거와 함께 앞으로 재주를 넘으며 까무러쳐 버렸다. 국부가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빗속에 널브러져 있었다. 피해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싶었다. 엉금엉금 일어나 보니 손가락·팔꿈치·무릎 등이 까이고 피가 흥건하며, 여기저기 쑤시는 데도 많다. 자전거도 핸들이 30도 쯤 돌아가 있고, 페니어백·속도계·휴대폰 등이 떨어져 나가 빗속에 나뒹굴고 있다. 비 피할 곳도 없는데, 쓸 일 없겠거니 하고 깊숙이 넣어 두었던 구급약을 겨우 꺼내 피나는 곳만 테이프로 감았다.
자전거를 타보니 삐걱거려도 굴러가기는 해 틀어진 핸들 붙잡고 조심조심 산을 내려왔다. 큰 길에서 호우류사를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호우류사는 나라 외곽에 위치해 있어 숙소 잡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고 나라시내를 향해 좌측으로 나아간다. 20시를 넘긴 시각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숙소를 빨리 접할지 알 수가 없다. 가던 차를 세우고 숙소를 물으니 나라시내까지 가야 한다며, 이 어두운 빗길에 나라까지는 너무 무리라고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나라를 향해 가는데 허기까지 밀려온다. 22시까지 달려 나라 입구쯤에서 호텔을 하나 발견하고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는 무인호텔인데 직원이 와서 도와준다. 일명 러브호텔로 이번 여행 중 가장 비싼 6480엔을 주었다. 러브호텔답게 각종 성 상품을 홍보하는 인쇄물과 용품들이 비치돼 있으며, 실내장식과 조명도 일반 호텔들과는 많이 다르다. 언 몸을 녹이기 위해 탕에 들어가니 여기저기 따갑고 시큰거린다. 양 무릎과 양 팔이 다 까지고 손가락에서는 피가 철철 나지만 생각보다 부상이 경미하다. 국내에서야 아프면 일정을 조정하거나 미루면 되지만, 외국 여행 중에는 일정을 완전히 포기해야 할 수도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여행 중 사고
주사 맞는 것에도 깊은 공포를 느끼는 외상성 상해를 가진 사람도 있다. 반면에 그자는 눈 한번 찔끔 감으면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도전하는 편이다. 한 번도 못해본 번지점프는 기회만 되면 얼마든지 뛰어내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안정성이야 과자 먹다 기도가 막혀 죽을 확률만큼이나 검증됐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단지 뛰어내릴 때의 두려움을 어떻게 숨길 것인가와 떨어져 매달려 출렁일 때 똥돼지 같이 보이지 않을까가 걱정될 뿐이다. 그자가 가장 두려워하고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의 대면이다. 순간적인 방심이나 타인 또는 환경에 의해 목숨까지 좌우되는 상황 말이다.
일본의 국도에는 50km 혹은 60km의 속도제한 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대부분 차들이 속도를 준수한다. 한국인의 운전 행태를 보면 안전불감증의 나라라는 게 확연해진다. 집단적으로 조급증이라는 환각에 빠져 미필적 살인 경주를 하는 것 같다. 과속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어--”하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개죽음 아니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가끔, 야구야 말로 미국다운 경기가 아니라 한국인의 운전습관과 비슷한 경기라는 생각이 든다. 투수는 자신의 실력과 무관하게 타인의 실수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러고도 계속 꼬리표처럼 개인의 결과물로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야구는 목숨까지 오가진 않는다. 난폭운전은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무모하고 무책임한 짓이다. 그러니 평균치보다는 겁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운전만은 예외다. 30년의 운전경력에도 장거리운전을 해야 할 땐 전날부터 부담되고 긴장된다. 모든 차들이 워낙 빨리 달리니 혼자만 느리게 달리는 것도 힘들다. 야간 주행 후엔 어깨가 뻣뻣이 굳어 피로감과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런 자가 지금 잔뜩 긴장한 채로 차와의 경주를 하고 있다.
아내가 대신 친구 장례식장을 다녀온 뒤로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자전거 여행에 대한 걱정이 더 깊어졌다. 그 후로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에서 노숙할 땐 통화료 아까워 집에 전화를 안 하면 새벽 2~3시에도 비싼 전화를 해댄다. 아내도 죽음에 대한 깊은 공포가 생긴 것이다. 잠이라도 따뜻한 데서 자고, 애간장 녹는 사람 생각해서 매일 밤 전화를 하란다. 그자 또한 이제는,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는 아내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가다가 장례식장 간판만 보아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가드레일도 없는 터널의 가장자리 좁은 턱 위를 달릴 땐, 벽에 부딪쳐 튕겨나가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더욱 긴장하게 된다. 뒤쪽에서 차 소리가 들리면 신경이 곤두서고 핸들이 더욱 흔들린다. 자전거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며 왜 이런 선택을 했나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아내의 말대로 무탈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게 지상과제로 정신을 지배한다. 그리고 사는 동안 원 없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도 더욱 간절해진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그만 하고 돌아오라고 할까봐 사고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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