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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를 찾아서

제주 울트라 200km 완주기3 - 아름다운 세상

제주 울트라 200km 완주기3 - 아름다운 세상.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어지럼증과 매슥거림이 좀 가시며 몸이 좀 풀리는 기분이다. 몸을 일으켜 자존심 상하지만 맘 굳게 먹고 전화를 했다. 대회 운영위원인 오인수 선배가 포기하겠다는 내 전화를 받고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단다. 절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말고 휴식 좀 더 취하고 식사를 하면 나아질 테니 포기해도 그 조치 이후에 포기하란다. 
  내 통화 얘기를 들은 주인아저씨, 아까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시더니, 여기서 제주까지 50km, 성산포까지 7km, 도합 57km만 더 가면 되는데, 왜 포기 하느냐며, 자신의 일처럼 펄쩍 뛰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빼다 주시며 힘내라 하시는데 목이 막히고 눈물이 핑 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아저씨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성산포를 향해 다시 전진이다.
 
“세상 참 아름답고 살만하지 않은가!”

  시간이 좀 흐르자 왜 갑자기 복통에 매슥거림, 어지럼증이 왜 왔는지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상하 옷을 껴입고 우의까지 걸치니 그리 추운지는 모르겠는데, 땀이 워낙 많이 나며 답답해 내내 모자는 벗고 뛰었다. 유독 땀이 많은 편인데, 금방 머리 감고 물도 안 닦은 듯한 머리로 모자도 벗고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그야말로 머리가 얼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젠 머리에 머프를 두르고 또 모자를 눌러 쓰고 전진이다. 계속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아내다보니 이젠 코 밑이 따끔거려 조심스럽다. 입을 벌리고 뛰다보니 찬바람 때문에 목도 따끔거리고, 입술 주위도 바람에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다. 머프로 입과 코를 가리고 뛰어보지만 너무 답답하다.

  100 ~ 153km 구간에서 거의 10시간을 소비하며 아침 8시가 다된 시간에 성산포 CP에 도착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참 앞서 가셨을 줄 알았던 김동해 선배님이 들어오신다. 나와 헤어져 도중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휴식 좀 취하고 오시는 중이란다.

  오인수 선배의 얘기대로 잠깐의 휴식과 밥이 보약이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패잔병 같았던 내가 출전용사처럼 힘이 솟는다. 거리가 누적될수록 빠른 휴식과 빠른 식사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깊이 새겨본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 김동해 선배님도 발바닥이 아프고 시간상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하신다. 나 또한 지치고 만신창이 된 몸으로 나머지 3/4을 7시간 40분 만에 간다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역시 노련한 경력의 지해운 주로 감독님이 충분히 가능하니 포기하지 말란다. 그래서 식사와 잠시 휴식으로 원기도 조금 회복된 상태라 시간외 완주라도 꼭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식당을 나섰다.

  출발 전 김동해 선배님의 신발을 보니 그야말로 만신창이 수준이었다. 발볼이 워낙 넓어 양쪽을 오려내고 좀 더 넓게 덧 댓는데, 보기에도 발이 여간 불편할 것 같지 않다. 아까부터 발이 아프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지만 이런 특별한 신발 때문인 줄은 몰랐다. 나도 발볼이 넓은 편이지만 신발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신어야 할 정도는 아닌데...... 저런 신발을 신고 여기까지 뛰어 오셨다니! 연세도 연세지만 정신력에서 나는 감히 옆에 설 수도 없는,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와 겨우 호구를 아는 12급 아마추어의 차이 같다. 너무 대단하고 존경스러워 주로 감독께 선배님 신발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선배님과 함께 성산포를 출발했다. 이제 시간외 완주라도 꼭 당성하고 싶다고 다짐하며 달린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있어 20여km 정도를 힘껏 달려 시간을 좀 만회하면 시간 내 완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힘껏 달려본다. 이제부터는 20분 이상 뛰고, 1~2분 걷는 걸 원칙으로 달려본다. 이제는 내가 선배님을 리드한다. 이렇게 165km 지점쯤까지는 서로 의지하며 함께 달렸다. 이제 나는 의지가 서서히 살아나는데, 선배님은 발바닥 통증으로 점점 스피드가 떨어진다. 결국 165km 지점에서 나 먼저 가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꼭 시간외 완주라도 하자는 얘기만 남기고 먼저 달린다. 어제 오늘 달리면서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왔지만 지금 이 순간 선배님과의 헤어짐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훌륭한 선배님과 함께 손잡고 골인하는 영광과 기쁨을 누려보고 싶었는데...... 이전까지는 약도 챙겨주시고 기다려 주며 함께 가자고 많이 배려하셨는데 혼자 앞서 가려니 미안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