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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를 찾아서

나는 꿈꾼다. -100km 울트라 참가후기

2009-09-05. 강진청자 울트라마라톤(100km). 기록 13:57:00.

  대회 이틀 전 아이가 가히 패닉 상태에 빠질 만큼의 사고를 첬다. 자식 일이야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다지만, 직접 당하는 입장은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다.그래서 너무너무 무겁고 우울한 마음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이번엔 첫 출전인 울트라대회를 혼자 참가하다 보니, 함께 가서 도와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기분이 너무 우울해서 누구의 도움도 안 받고, 혼자만의 힘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런저런 답답함에 대한 한바탕 살풀이라도 하듯, 나 자신을 훨훨 태워 바닷바람에 흔적 없이 날려 보내고 싶었다

  이번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참가하면서 우리 클럽의 회원들이나 마라톤 애호가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어느 분야든 좀 더 긴 시간을 투자해야 안아주는 경외감 같은 게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입문 1년도 안된 사람이 너무 앞서가며 설치는 모습으로 비칠까봐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조급하게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참가하게 된 이유는 남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면서도, 참 돈 벌기 힘들겠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돈 앞에서 이지적이고 이기적이지 못한 거며, 냉정하고 냉철하게 끊고 맺지 못하고 어설픈 감상과 휴머니즘에 빠져드는 것 등 말이다. 그런데 성격을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술 담배를 끊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그 사람의 정체성이거나 자체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어차피 성격을 크게 바꿀 수 없다면, 어설픈 낭만이나 예술적 취향, 아직도 철이 덜든 듯한 실험정신 등을 차라리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방법을 선회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세운 계획이 사오정 오륙도가 되면 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하게 하는 ‘매개자’가 되어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사오정 오륙도의 입장에서 새롭게 도전하려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먼저 실천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떠어떠한 방법과 시간적 노력으로 6개월 후에는, 또 일 년 후에는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를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실패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꾸준한 연습을 하였고, 당연히 완주는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무엇을 깨닫고 배우는 것도 때론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입장만이 아닌, 가르치는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처음 도전하는 100km를 시간 안에 완주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등산이든, 자전거든, 마라톤이든, 한두 번도 제대로 안 해본 사람이 주관 없이 획일적으로 외양부터 따라 꾸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빠지고 미치기 전에 외양만 흉내 내는 건 너무 속물스러워 보여서이다. 또한 마라톤은 돈이 별로 안 들고, 빈부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이고 평등한 스포츠여서 좋았다. 그런데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은 돈을 썼다. 마라톤 비용으로야 그리 큰돈이 들어갈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모자, 옷, 신발을 모두 맘에 들게 갖춰 입고 뛰고 싶었다. 이제는 좀 꾸밀만한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또한 디자이너의 자존심에 맞게 색깔을 좀 맞춰 입고 싶었다. 그리고 기타 준비물들을 갖추다보니 족히 30~40만원 정도의 거금을 썼다. 이렇듯 대회 이틀 전까지만 해도 기분도 좋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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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을 하면서도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형편없는 결과가 나와도 이토록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식 문제는 일시적인 것으로 끝날 수가 없는 문제이기에 두고두고 답답하고 우울하다. 이렇듯 무거운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다. 그러니 일년 안에 100km 울트라까지 성공시키고픈 욕심과 아울러, 자식 문제야 내 맘대로 못한다지만, 나 혼자만의 문제인 달리기야 죽든 살든 끝까지 달리리라 마음먹었다.

  처음 10여km까지는 여럿이 무리를 지어서 달렸다. 그런데 첫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나니, 흩어지고 혼자되어 뛰었다. 어둠 속에서 잠깐 잠깐 모르는 사람과 같이 뛰다가도 먼저 가거나 보내거나 한다. 강진 시내 외곽을 도는 구간 중에 30km 정도 까지는 어두워서 라이트를 켜고 뛰었다. 차량 통행도 아주 드문 한적한 길이다보니, 풀벌레 소리만 심란하게 들릴 뿐이다. 시작 전 계획은 50km까지는 급수대에서만 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30km지점까지는 한 번도 걷지 않고 뛰었다. 뛰는 내내 머릿속은 자식들에 대한 심란한 마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30k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둥근 달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라이트를 켜지 않고도 길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혼란스럽지 않게 라이트를 끄고 조용히 꿈을 꾸듯 달렸다. 전력질주를 하지 않았는데도 거리가 누적되면서 점점 힘들게 느껴진다. 왼쪽 정강이가 약간 마비 증세가 온다. 만나고 헤어지는 달림이들 중에 걷다 뛰다 하는 이들이 보인다. 나도 약간은 전염이 된 대다가, 증세가 느껴지면 미리 조치를 취하고 쉬어가라는 박진순 선배님 조언대로 가끔씩 걷기도 한다. 애초 내 각오에 대한 1차 실패일지라도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빠르지 않은 속도이기에 50km 정도까지는 무난하게 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100km에 대한 압박 때문인지 예상보다 빨리 피로가 몰려온다. 한번 걸어보니 자주 걷고 싶어진다. 기후, 코스, 컨디션 어느 하나 더 이상 좋기도 힘들다고 할 만큼 좋게 느껴지는 조건인데, 풀코스 거리도 못가서 이렇게 힘들어지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30km를 지나면서 매번 겪다시피 하는 오른발 앞꿈치가 약간 마비 증상이 온다. 뛰면서 발을 오므렸다 폈다 해본다. 첫 100km 출전이라 경험이 없어, 작은 배낭에 필요 이상의 물건을 집어넣은 모양이다. 처음 입어보는 타이즈다보니 앞이 튀어나와서 겉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가 벗어 넣고, 모자도 답답해서 배낭에 집어넣었더니 배가 불러 멜빵이 답답해 어깨가 마비된 것처럼 무겁고 답답하다.

  어렵사리 51km 중간식사 장소까지 왔다. 예전에 여러 번 혼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간 급수지마다 쵸코파이며 바나나를 억지로라도 먹어왔다. 여기서도 된장국에 조금 밖에 안 되는 밥을 말아, 억지로 절반가량을 먹었다. 그리고 별 휴식 없이 바로 출발이다.

  이제 그야말로 후반전이다. 강진만을 따라 끝이 없이 이어지는 평평한 길. 중간 중간에 수킬로 씩 펼쳐지는 직선의 방파제 길.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전 코스를 차로 돌아보고, 너무 평탄해서 언덕에 약한 나한테는 최적의 코스라고 생각되어 참가를 결정했었다. 지금 뛰고 있는 방파제 길은 여름휴가 때 혼자 뛰어본 적도 있다. 그때는 돌아올 때 맞바람이 약간 세다 싶었는데, 오늘은 땀 만 식혀줄 정도의 미풍이 아주 좋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이 바람이 아주 약간만 더 세다면 100점이다. 나는 평평하고 직선 주로이면 무조건 좋은 줄 알았는데, 다른 달림이들의 얘기를 들으니까, 너무 평탄하고 긴 직선 주로는 질리게 만든다고 힘들어 한다. 나 또한 뛰어보니까 많은 부분 이해가 갔다. 어지간한 선두그룹이 아니고는 시종일관 걷지 않고 뛰기만 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오르막이 나오면 잠시 걸으며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데, 평지에서 걷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합리화하기에도 약하기 때문에, 인내와의 싸움에서 패배처럼 느껴져 정신적인 면이 약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자기 규칙이 무너지면 걷는 거리도 길어질 수밖에 없고 말이다.

  55km 지점을 넘어서면서 부터는 유턴해 돌아오는 주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가끔씩 ‘화이팅!’을 외쳐주지만 소리가 사흘 굶은 모기소리다. 그나마도 귀찮고 힘들어서 하기가 싫다. 가까스로 69km 반환점을 돌아 75km 지점을 통과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오른발바닥 앞부분이 너무 저리고, 골반이 아파서 뛰질 못하겠다. 12시간 대 골인을 포기하고 하염없이 걷는 거리가 길어졌다. 가끔 뛰어 봐도 5km마다 표시되어있는 거리표시 숫자를 만나기가 너무 힘들다. 둥근 달이 떠 있긴 해도 옅은 구름들에 가려 아주 밝진 않다. 그런데 거리표시 글씨는 스프레이로 땅바닥에 작고 가늘게 써놔서 신경 쓰고 보지 않으면 잘 안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5km의 거리, 화정에서 백마역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 한 시간은 족히 뛰다 걷다 한 느낌인데도 거리 표시가 안 나타나니, 온 신경을 땅바닥에 집중시켜 보물을 찾듯 글씨만을 찾고 있다. 못 보고 지나쳤나 싶었다가도 배는 늘어진 듯한 거리쯤에 어김없이 나타난다.

  75km 이전만 해도 12시간대 골인은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지럽기도 하고 의욕도 바닥이 나버린 모양이다. 오기만으로는 안 되는가 하는 낭패감도 밀려온다. 그러다보니 91km 지점까지 오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까먹었다. 이제 13시간대를 지키기 위해서는 뛰어야 한다. 가게에 들러 콜라와 포카리스웨트를 사 마셨다. 어지럼증은 약간 가시는 것 같다. 그러나 한번 꺾인 의지는 더 이상 뛰고 싶은 맘이 안 생긴다. 발바닥과 고관절 때문에 절룩거리며 하염없이 걷는다. 그래 처녀 출전인데, 이렇게 걸어가도 14시간 30분 안에는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하고 자위하며 체념한다. 아침 안개 때문에 햇볕이 안보여 좋기는 한데, 이쯤에서 비라도 한줄기 내려준다면 금상첨화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95km도 지났다. 많은 갈등 끝에, 아무리 시간 내 완주라지만 걸어서 들어가기는 싫다는 쪽이 승리를 하였다. 4.5km 정도를 남겨두고 뛰기 시작했다. 한번 뛰기 시작하니 그런대로 뛸만했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나 싶게 6분대 속도로 뛰었다. 그리고 13시간 57분에 골인을 하였다. 별다른 감흥도 큰 느낌도 없다. 내 스스로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거라고 미리 자신한 때문일까. 그래도 이 느낌은 두고두고 새록새록 느껴질 것이다. 하여튼 100km는 너무 힘들다. 대회가 끝난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제대로 걷질 못하겠다. 앞으로 풀코스까지만 뛸 것인지, 100km이상도 계속 도전할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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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한 건 일 년 전엔 감히 나 스스로 상상도 못했을 만큼의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나의 아들들에 대해, 과거에는 그토록 절망적이었는데, 사람 앞날 알 수 없는 거라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항상 나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주고 격려해주고, 매번 대회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애써주는 나의 반려자에게 깊은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너무 줄지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는데, 화정마라톤에서는 서로 주고받는 잔잔한 정이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 화정마라톤 회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입니다.

  나에게 소중한 울트라 첫 경험을 안겨준 ‘강진청자울트라마라톤대회’를 잊지 못할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