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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를 찾아서

별 볼일 없는 오기- 서울국제마라톤

2010-03-21. 서울국제마라톤(풀).   기록 : 3:54:48.

  요즘처럼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모든 일들의 과정은 축소 생략된 채, 화면에 보여지는 결과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결과지상주의가 심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내의 준비과정을 거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라톤에서도 자신의 기록을 단축코자 한다면 그 준비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가? 그래서 지난 몇 개월 많은 훈련을 했지만, 기존 기록보다도 10여분을 단축하는 3:30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달리기 훈련만으로는 안 된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30대 후반에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 폐결핵에 걸린 적이 있다. 9개월 동안이나 독한 결핵약을 먹을 정도였으니, 지금도 폐 사진을 찍으면 큰 결핵의 상처가 있다. 또한 초등학교 운동회 때 8명씩 달리는 달리기에서도 꼴찌만 할 정도이니 너무 창피해서 체육시간이나 운동회가 정말 싫었다. 결론적으로 이래저래 폐활량이 안 좋고 달리기도 타고난 소질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나와 함께 뛰면서 숨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은 3:30은 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달리기 외의 조건 또한 최대치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조건의 하나가 몸무게라는 느낌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제 달리기를 시작한지 1년 6개월이 되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열심히 하고, 달리기로 인해 많은 이들을 만나고, 많은 상황을 경험해서인지 꽤 오래된 느낌이다. 이제는 달리다 보면 몸 상태나 외부적 영향들에 대한 미세한 느낌들이 조금씩 느껴진다. 지난 1년3개월여를 금연을 하면서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하지 않던 군것질과 간식을 자주 한 결과 작년 몸무게보다 2kg이상 늘었다. 그 결과 요즘 뛰다보면 몸놀림도 부자연스럽고, 숨도 더 차고, 하체 여기저기의 통증도 많이 느껴졌다. 마치 몸무게 2kg이 100도를 넘기는 기화점인 양, 여러가지 느낌들이 많이 달랐다.

  나 자신이 담배를 끊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라면, 운동을 위해서나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다는 욕망보다도 아침에 무거운 머리와 잠자리에서 목이 근질근질하며 나오는 기침 때문이었다. 또 하나, 세상의 어떤 종교나 우상을 배격하고 오로지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내 의도에 반하는 담배라는 하찮은 습관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기 전투적 방식의, 습관의 노예로부터 해방을 위해 담배를 참고 있지만, 꽤나 관념적인 성격이라 평균보다 집착이 더할지도 모른다. 또한 나는 소질도 없고 꾸준히 공부해오지 못했으면서도 아직도 문학이나 영화 연극 같은 예술분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만큼, 영원히 철들지 못할 어설픈 감성주의자다. 그러니 담배를 끊고 마라톤을 한다는 건 예전의 나로 본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통상적으로 소득수준이나 교육수준이 흡연율이나 금연 성공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여기에 괴변 하나를 더하고 싶다. 대체로 에고이즘이 강한 사람들이 쉽게 담배를 끊고, 심성이 유하고 연약한 휴머니트들은 쉽게 못 끊는다고 생각할 만큼, 아직도 담배를 못 끊는 사람 편이다. 이렇듯 담배에 미련이 많다보니 요즘도 수시로 담배에 관한 꿈을 꾼다. 어떤 때는 재떨이에서 꽁초를 주워 피우고, “어! 틀려버렸네.”하고 후회하고, 어떤 땐 담배 한 갑을 사서 피우고, 나머지는 버리고 다시 금연을 해? 아니면 아까우니까, 책꽂이 위에 숨겨놓고 가끔 한 대씩 피워? 하고 고민을 한다. 실제로 담배를 한 번 피운 적이 있다. 술좌석에서 담배를 막 피우라고 권하기에 받아서 맛있게 피웠다.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 의지대로 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억지로 안 피우는 것 또한 지나친 관념의 노예로 비쳐질 것 같아서였다. 하여튼 ‘무라까미 하루키’가 언급한 것처럼, 부조리적이고 독소적 성향이 강한 나 자신이, 마누라보다도 더 친근하고 달콤한 담배를 참는다는 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자연히 평소에 하지 않던 많은 주전부리와 함께 불어난 몸무게가 요즘 달릴 때 부담으로 느껴지면서 몸무게에 대한 생각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래서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몸무게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회 2주 전부터는 좋아하는 술도 참았다. 1주일 전인 일요일 저녁 몸무게가 70kg이었다. 그런데 월화수 사흘 동안 오로지 소 등심만 구워먹고 물 이외에는 소금이나 커피 한잔도 마시질 않았다. 그랬더니 사흘만에 5kg이 빠진 64.8kg을 기록하였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그런대로 참을만하게 느른한 정도였는데, 수요일에는 꽤나 짜증날 정도로 느른하고 온몸이 찌뿌듯하며 신경질이 났다. 잠자리에서도 몸이 쑤시고 허기져 깊은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마지막 수요일 저녁에는 체내에 남은 글리코겐을 완전 연소시키기 위해 눈발이 날리는 공원을 혼자서 달렸다. 겨우 10km(14회전)를 달리는데, 너무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6~7분 속도로 천천히 뛰는데도 첫바퀴 부터 숨이 차고 다리도 천근만근인 게, 10km 목표거리가 100km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글리코겐을 완전 소진하고 새롭게 축적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풀코스를 그것도 좋은 기록으로 골인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믿고, 조그마한 핑계나 우려도 없애고자 하는 마음에서 참고 달렸다. 아주 느린 속도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허리는 끊어질 듯이 쑤시고, 앞뒤로 흔드는 양팔의 알통이 마비가 온다. 양손의 긴장을 풀기위해 내려뜨리는데도 뻣뻣이 굳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펴지질 않았다. 운동을 끝내고도 한동안 양 팔뚝이 심한 중노동을 한 것처럼 뻐근하다.

  목금토 사흘은 곧바로 몸무게가 원상복구 되는 걸 막기 위해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로 과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목요일은 가르침대로 하루를 쉬고, 금요일엔 저녁 8시가 다 된 시간에 잔치국수와 감자전을 사먹고, 어울림 정모에 나갔다. 빠른 속도로 2km 다섯 바퀴를 뛰는데, 식사 전이라 배가 아픈데도 몸은 제법 가뿐하게 느껴진다. 엊그제 그토록 힘들었던 상황이 간사하다 싶을 정도로 먼 옛날 일 같다. 몇끼의 식사가 사람의 성격과 인내력, 지구력을 완전히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지배해버릴 수 있겠다 싶은 것에 놀랐다. 그래서 이제는 입 짧고 편식 심한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 사흘 동안 고기 만 먹고 5kg이나 빠지면서 느른하고, 쑤시고, 신경질적이고, 졸려서 빨리 자는 것 보지 않았느냐.”며, “음식 골고루 먹지 않으면, 집중력도 떨어져 공부도 안 된다.”며 잔소리 한다.

  이렇듯 내가 싫어하는 ‘의식행위’ 같은 걸 하는 이유는 42.195km가 얼마나 먼 거리이며, 더군다나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고자 한다는 게 너무너무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길고 고통스러운 싸움에서 믿고 또 경계해야 되는 대상은 오로지 나 자신밖에 없다. 그러니 나 자신에게 조그마한 핑계거리도 제공하고 싶지 않아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마음의 배수진을 치고 담담하면서도 긴장된 마음으로 출정을 하는 것이다.

  새벽 3시 50분, 벨소리가 울리기 전에 먼저 눈이 떠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바깥 풍경을 살폈다. 오랫동안 준비하며 기다려왔던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은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어제 저녁까지 아주 심하던 황사가 걷힌 것 같다. 아침을 떡과 우유에 만 시리얼을 먹고, 집을 나서기 전에 큰일을 보기 위해 몸풀기를 하였다. 그리고 큰일을 보는데 그리 시원하지가 않다. 버스에서 내려 출발시간이 되길 기다리면서 몸을 푸는데, 찬바람을 동반한 날씨가 제법 춥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리고, 인기 선배와 함께 출발을 하였다. 몸무게를 줄이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몸이 가볍고 기분이 괜찮다. 초반에는 무리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3:30패매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패매 뒤로 몰려드니, 패매와 거리가 멀어진다. 그런데다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으니, 진로도 많이 방해되는데다가 잘못하면 걸려 넘어질까봐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8km지점을 넘어서면서는 어느 정도 몸도 풀린듯해서 3:30패매 풍선 두 개를 연거푸 추월해 앞에서 달렸다. 날씨가 춥고 바람도 있어서인지 경기 내내 별로 땀이 나질 않아, 급수대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리며 한 모금씩 마셨다. 그렇게 25km지점까지는 3:30패매보다 앞서 무리없이 달렸다. 그런데 광진교를 건너는 약간의 오르막을 달리는데, 갑자기 하체의 힘이 쭉 빠지면서 주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에 몸도 늘어지면서 착 가라앉는 느낌이 밀려왔다. 그러는 순간 순민형이 뒤따라와서 힘내라고 하는데, 안되겠다는 절망감이 크게 밀려왔다. 곧바로 자봉을 하는 조남옥, 박화숙, 총무님 색시를 만나서 반갑게 꿀물을 받아 마시면서 힘들겠다고 꼬리를 보여버렸다. 그래도 천천히라도 뛰어보라는 조남옥의 조언대로 속도를 대폭 늦춰 달려본다. 32km 지점까지는 그래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 시간을 많이 까먹어 3:30목표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강한 욕심을 가졌다가 목표를 놓쳐버리자, 달리는 의미도 의욕도 몽땅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결국은 32km 지점에서 서버렸다. 내 자신에게 짜증도 나고 걷는 게 창피해 지하철이라도 타고 싶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차비도 준비를 안했었다. 그렇게 걷다 뛰다를 반복하면서 황총무가 자봉하는 잠실대교까지 왔다. 이미 대회는 체념해버린 상황이니 총무님이 벗어주는 잠바를 뒤집어쓰고 편히 앉아 맥주를 마시며 술안주용 과자를 한주먹 받아 허기를 채웠다. 혼자는 가기가 싫어 누구든 올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추위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어 일어나 잠실대교의 추위를 빨리 피하기 위해 달렸다. 그리고 잠실 대교를 지나서는 다시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마침내 골인을 하였다. 그렇지만 걸어버리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터라 아무런 감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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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능력도 안 되면서 3:30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인가? 25km 지점에서, 내겐 3:30은 너무나 과한 목표라는 깊은 좌절감이 밀려왔었다. 오기 하나는 누구 못지않게 강하다고 생각해 악으로 깡으로라도 밀어붙이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기도 끈기도 발휘를 못하고 무참히 깨져버렸다. 다음을 위해 실패의 원인을 곰곰이 따져본다. 초반에 너무 오버페이스 때문일까? 그러나 3:30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 아닌가? 3:30패매보다 천천히 달리다가 지친 후반에 치고 나간다는 건 더 힘든 얘기 아닌가? 다리가 풀리며 몸이 가라앉는 느낌은 체력이 고갈되었다는 얘긴데, 체중 줄이기와 식이요법에 너무 신경쓰느라 영양보충을 제대로 못한 것인지? 써브3도 아닌 겨우 3:30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연습 때문인가? 2월은 영업과 해외여행, 궂은 날씨 때문에 훈련량이 모자랐었다. 그리고 대회가 있는 3월에야 30km 이상의 장거리 훈련을 몇 번 했는데, 늦은 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 반면에 스피드 훈련은 거의 하지 않고, 장거리도 혼자서 개념 없이 뛰다보니 훈련의 질에 문제가 있었나? 아니면 진짜 나의 신체조건으로는 3:30이 힘든 목표인가? 다음 대회를 대비한 계획이나 방법, 목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