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마'에서 만난 사람들.
원래 나는 대한민국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단체(심하게 표현하면 패거리) 기피증을 갖고 있었는데, 자발적으로 마라톤 동호회에 들어가 열심히 운동하며 좋은 동료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사람이 반갑고 고맙고 할 만큼 친해지면 속마음도 털어놓고 미래나 희망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여기서 다행히 40평짜리들 끼리 만났거나 엄친아의 부모들끼리 만났다면 50평의 꿈을 실현하는 방법이나 3% 학원 정보를 얘기하며 말이 잘 통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고, 그런대도 아주 자주 만나 술 마시고 긴 얘기를 나눠야 하지 않은가? 그러다보면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대화를 꺼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토론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실정에 몇번 싸우다보면 그런 짜증나는 얘기 하지말자는 말이 나올 것이며, 별 의미 없는 얘기들로 내려가는 입 꼬리를 가식적으로라도 올리며 허허허 웃어야 한다.
물론 아는 사람이나 동행자 없이 혼자서 참석했다가 대절버스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과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깊은 멋을 간직한, 너무 수수하고 꾸밈이 없는 ‘금수강산’님을 만났다. 그리고 이 분과는 동네가 가까워 1년 동안 여러 번 만나 오다가 이번에도 동참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수년전에 만나 성향이 비슷한 걸 알고 친분을 유지해왔던, 한국전쟁 때 태어나시고 또 그때 아버지를 잃으시고 힘들게 살아오셨으면서도 얼굴에 평화와 천진함이 가득한, 그러면서도 4대강 집회니 노무현 대통령 1주기를 꼭 전화로 알려주시고 한 자리라도 채워주는 게 당신이 해야 할 몫이라며 참여하시는 실천력과 마음이 나보다 훨씬 젊으신 ‘이동교’ 큰형님도 함께 참석하셨다.
또 작년 대회에서 만나 그 후로도 몇 번 만난 ‘아나키스트’님을 만나는 것도 하나의 커다란 즐거움이 되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여러모로 배울게 많다. 부지런한 참여와 세심한 인본주의, 공무원임에도 불이익조차 감내하려는 정신, 지적 탐구, 추진력 등등......
그래서 올해는 달리기보다도 이런 분들을 만나고 싶어서 ‘조반마’가 기다려졌다. 그런데 대회 날짜가 다가와도 공지가 안 올라와서 실망하던 차에 언소주에서 주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더욱 반갑게 이번에는 주인으로서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나는 미약하게나마 이 땅에 사는 사람의 도리라 생각하여 몇몇 단체에 소액의 기부는 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활동은 하지 못했다.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격적으로 여러 단체에 가입해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직접 참여하하고 행동하는 떳떳한 시민이 되어야한다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압박감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인들로부터 모모 단체에서 같이 활동하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유보했었다. 이유는 조금이나마 더 관심 있는 쪽의 ‘언소주’에서 활동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대도 회원 가입만 해놓고 활동은 전혀 안하다가 ‘조반마’ 주최 소식을 듣고 회원들을 만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참석했다.
대회 전날인 토요일이 아버님 기일이어서 많은 음식을 세봉지로 나눠서 준비했다. 하나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정다운 분들과 먹기 위해, 또 하나는 작년에 맨 몸으로 끼어서 술과 파전을 잔뜩 얻어먹은 ‘참여연대’ 분들에게 드리기 위해서, 또 하나는 만남을 기대하는 ‘언소주’ 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거기에 올 봄에 직접 따서 담가놓았던 ‘아카시아주’를 큰 병으로 두병을 가지고 갔었다. 가지고 가면서는 술이 인기가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 가장 의미 있었던 상황은 작년에는 못 뵛던 이장님을 뵙고 악수하고 같이 사진까지 찍은 것이리라. ‘존경합니다’라는 인사도 드렸는데,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젊으셨다. 그리고 뻔뻔스럽거나 개기름 좔좔 흐르지 않는, 내 마음으로 그리고 싶은 많은 얼굴들과 마주하고 있는 시간은 참 즐거웠다.
서로에게 희망을 갖게 해주는 많은 분들과의 짧은 만남 뒤의 작별은 무척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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