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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를 찾아서

성지순례 222km 울트라2 - 벼락맞아 죽을 확률

성지순례 222km 울트라2 - 벼락맞아 죽을 확률.

  47km 지점의 신당동떡볶이집에서 설렁탕을 먹는데 들어가질 않아 국물만 조금 마시고 또다시 출발이다. 또 한참을 달려 60km 지점의 하우현성당 전후였던 것 같다. 5만번 가까운 벼락이 있었다는 그 새벽에 우리 3명의 일행은 청계산을 오르기 위해 동네의 시멘트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불과 우리와 10m도 안 떨어진 가로등 꼭대기에서 번쩍하더니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전류 빛이 기둥을 타고 지면으로 흘러내렸다. 길바닥에는 물기도 많았는데, 우리가 좀 더 가까이 있었으면 감전됐을까 하는 호기심 어린 궁금증이 생겼다.

  자욱한 안개와 비 내리는 청계산을 오르노라니, 과거에 일본 후지산을 오르던 때와 느낌이 비슷해 감회에 젖어본다. 새벽 일출을 본다고 밤새 비를 맞으며 오르던 후지산에도 지금처럼 안개가 자욱했었다. 그때 오르던 후지산은 이곳 청계산보다도 몇배가 높은 3776m나 되는데, 나이든 중국계 미국 여자분을 부축하고 오르면서도 지금처럼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산소 부족 때문에 빨리 오를 수도 없지만, 나이든 여자분과 같이 오르노라니 더욱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을 다투는 대회인데다가 일행들과 속도를 맞춰야하니 쉴 수도 없어 금방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나는 폐활량에 크게 문제가 있는지 달릴 때 언덕에는 아주 약하고 이런 산악코스에서도 조금만 속도가 빨라지면 맥을 못 춘다. 거기에 더해 빗물 흘러내리는 미끄러운 산길을 런닝화를 신고 오르려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최소한의 정보조차 무시한 채 준비를 너무 소홀히 하다 보니, 이런 험한 산악마라톤인지도 모르고 출전한 것이다. 산을 몇 개 넘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산악마라톤이라는 명칭은 없으니 남산순환로처럼 잘 닦인 도로로 몇 개의 고개를 넘으면 되는 줄 알았다. 출발하기 전 대회장에서 이 대회가 ‘한반도 횡단’보다도 더 어렵다는 말을 200% 실감하고 있다. 미끄러운 산길을 트레일런화가 아닌 헐렁하고 미끄러운 런닝화를 신고 내려오느라니 발가락이 앞에 부딪쳐 발톱 하나가 멍들어 빠지기 전이다.

  또 이 밤이 새기 전에 경험한 신기한 일 하나는 커다란 우박이었다. 한밤중에 산길을 걷는데, 비와 함께 후두두둑 우박이 떨어지는데 얼마나 큰지 옷 두 개와 우의를 걸친 어깨에 우박이 떨어지는데 따끔거렸다. 대체 크기가 얼마만하나 보려고 장갑 낀 손으로 받으려니까 따끔따끔 아파서 받을 수가 없다. 제갈량의 10만 대군이 계곡에 매복해 있다가 비를 일으키고 얼음 탄으로 쏘아대듯 하는 기묘한 날씨 속에서도 청계산 국사봉을 찍고 둔토리성지에 다다랐다. 조직위원들이 통과시간을 체크한다. 얼핏 보니 소주병 2개가 놓여있다. 이런 날씨에 뛰는 사람들도 고생이지만, 온 밤을 비 피할 곳도 없는 산 위에서 떨면서 소주로 추위를 달래고 있는 조직위원들이 안쓰러우면서도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새벽에 청계산을 내려올 때엔 석배 형님이 신발을 계곡물에 헹구느라고 약간 뒤쳐졌었다. 이때 동네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당신들 누구냐고 묻더란다. 군인이라고 하기엔 머리도 길고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성지순례울트라마라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해 줬다지만, 그분이 쉽게 이해하고 궁금증이 풀렸을까 싶다. 일반인들에게 우리의 존재나 달리는 이유를 한시간을 설명해도 간첩 아니라는 것 빼고는 그 어떤 것도 쉽게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 같다.
  청계산을 거의 다 내려올 무렵에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고 집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각시가 밤새 울려대는 천둥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며 몸 버리겠다고 그만 끝내고 돌아오란다. 고맙지만 그럴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침 8시경에 65km 지점의 식당에 들어가서 설렁탕을 시켜먹는데. 여기서도 먹히질 않아 국물만 조금 마시고 말았다. 잠시 후 조효선 선배님의 재촉에 서둘러 우의를 걸치고 다시 전진이다. 산도 산이지만 크고 작은 여러 고개를 넘느라 밤새 고생을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는 모처럼 만나는 긴 내리막이다. 쉬지 않고 40분 이상을 달렸다. 다시 오르막을 거쳐 73km 지점의 손골성지에 도착했다.
  워낙 궂은 날씨다보니 사진 찍어주는 곳이 별로 없었는데 손골성지에서는 사진까지 찍어주신다. 따뜻한 오뎅 국물에 김밥을 몇 조각 먹고, 커피까지 한잔 얻어마셨다. 친절과 따뜻함에 고맙다는 말만 몇 번을 뒤풀이하고 다시 전진이다.

  몇 개의 크고 작은 고개를 지나, 분당의 긴 탄천길로 접어들었다. 80km 지점에 다다르니 근처에 집이 있는 내 소중한 친구가 나와서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또 3~4km 후방에서 다시 한번 사진을 찍어주고 이온음료와 인절미를 꺼내준다. 반갑게 마시고 여유 있게 얘기할 정신도 없이 시간에 쫓긴다는 말만 남긴 채 곧바로 이별이다. 뛰면서 누군가가 어느 지점에서 콜라라도 한 병 들고 기다린다고 하면, 그 기대감 때문에 몇km는 힘든지 모르고 달리게 된다. 아마 이게 응원의 힘일 것이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무리한 운동을 하는 친구를 위해 나와서 사진 찍어준 친구야 고맙다. 

  긴 탄천을 지나고 성남 시내를 지나 드디어 남한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꽤 높은 곳까지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포장길. 그리고 잘 만들어진 계단길. 애초 내가 생각했던 대부분의 산악코스가 이러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생각했던 잘 닦인 길을 오르는데, 숨이 차서 죽을 맛이다. 결국 남한산성 남문을 1km도 안 남겨둔 지점부터는 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우 남문에 오르니 석배 형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서로 시간에 쫒기니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참 고맙고 마안하다. 조효선 선배님과 함께 컷오프를 30여분 남겨두고 101km 지점의 남한산성성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