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라톤, 나를 찾아서

2012 한반도횡단 308km 울트라 자원봉사기

그리 길지 않은 울트라 경험이지만, ‘자원봉사’하면 잊지 못할 몇몇 장면들이 있다. 종단 때 냄새나는 신발을 벗겨 깔창까지 빼고 모래를 털어주고 얼음물에 발을 담가 놓고 주물러 주시던 김채기님, 제주200km에서 땀에 젖은 머리가 얼어버려 어지럼증 때문에 포기한다고 전화를 하자 끝까지 포기를 못하게 막았던 오인수님...

 

 

이번 ‘2012 한반도횡단 308Km’에서는 지맹에서 역할을 맡고 있다 보니 당연처럼 2CP(하남, 100km 지점)에서 CP장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누군가 “CP장의 역할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거야 당연히 대회 진행을 돕고 해당 CP를 관리 감독하는 것 아니야.”고 대답했다. 그러나 경험미숙 때문인지 위와 같은 분들에 대한 깊은 영향 때문인지 관리 감독보다는 선수들을 위한 봉사 쪽으로만 마음을 쓰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도 주자들에겐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고, 같이 봉사한 분들껜 뿌듯함보다 찜찜함이 컷 던 것 같다. 그렇게 크고 작은 얘깃거리를 남기며 대회는 끝이 났지만 다음 대회와 KUMF의 발전을 위해 몇가지 느낌을 말하고 싶다.

 

몇몇 사람의 노력으로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완성도 높고 풍성한 대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선수들과 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은 쉽게 늘릴 수 없는 문제이니, 봉사 부분만 말해보겠다. 여태껏 많은 봉사자가 있었기에 대회가 유지돼 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봉사한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비록 자원봉사라고 해도 책임을 맡았다면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할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은 본인 노력만으론 힘들다고 본다. 함께 느끼고 함께 변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연맹에서는 억지로 조직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길 것이다. 그러면 조직위원장은 감투 하나 쓴 죄로 고군분투하면서 정말 죄인처럼 아쉽게 각 지맹에 협조 요청을 한다. 당연한 요구인데도 조직위원장님의 전화는 사적인 일이라도 부탁하는 것처럼 항상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부탁 받은 각 지맹 또한 아쉽게 자원봉사 인원을 모집할 것이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일사분란한 체계를 갖고 준비하기 어렵고 알아서 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참가한 봉사자들조차도 뿌듯함 보다는 한 두 사람의 망나니로 인해 “잘해야 본전 안 그러면 욕이 바가지.”라는 말과 함께 자원봉사를 외면해 버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이 보게 될 것이다.

 

덮고 넘어가려 했는데 재발방지를 위해서 한마디 하겠다. 정말 어이없는 꼴을 당하고 나니 다들 더러워서 다음엔 절대 안한다고 하는데, 이 책임을 누가 져야하는 것인가? 시시비비는 있을 수 있다. 무지무지 화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백번 천번 양보해도 이건 아니다. 만약 데자뷰가 온 사람이라면 그보다 더하고 똥을 싸 놓은 들 기꺼이 안 받아줄 봉사자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화장실의 반창고들을 주우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배번을 뜯어버리지 못한 게 너무 속상했다. 혹여 누구라도 다음에 이런 비슷한 일을 당한다면 대회 위상과 품위를 위해 가차 없이 배번을 뜯어버리길 권하고 싶다. 대단한 잘못이 아닌 이상 함부로 인격을 희롱하는 건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선수들이 봉사자들의 좀 더 확실하고 안정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선수들 스스로도 많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봉사자들은 선수들을 위해 애를 쓰지만 선수들처럼 영광과 희열이 없다. 그렇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어쩌면 주자들보다도 더 꽃으로 떠받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자원봉사를 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믿음직한 자원봉사를 받으며 계속 뛰고 싶어서 하는 얘기다. 아마 봉사자들에게 가장 큰 보람이라면 선수들의 한마디 칭찬과 감사의 표시 아닐까 싶다. 그러면 자긍심도 높아질 것이고, 좀 더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봉사에 임하지 않을까 싶다.

 

 

뛰는 사람이나 행사를 진행하고 돕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흥겨운 한판의 축제가 되어야 만이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연맹에 요청하고 싶다.

 

1. 매번 뛰는 사람은 뛰기만 할 게 아니라 봉사도 한번 쯤 해보면 봉사에 대한 상황도 알게 되고 전체적으로 보완 발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상징적으로라도 그랜드슬래머의 자격요건에 최소한 한 번이라도 자원봉사 기록을 가진 자로 제한하면 어떨까? 일주일씩 시간 내면서 하루도 시간을 못 내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이 요구만 심한 것 아닌가?

 

2. 횡단 종단을 완주할 능력이 안 되면서도 자원봉사는 열과 성을 다하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의 헌신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각 대회 때마다 선수들의 인기투표와 조직위원장의 평가로 최우수 자원봉사자 한 명을 뽑아 ‘명예완주패’를 수여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봉사자에 대한 선수들의 시선도 달라질 것이며, 봉사자들 스스로 자긍심과 적극성도 커질 것이며, 선수들보다도 자원봉사자가 주인공이 된다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

 

 

다정다감하고 든든한 조직위원장님의 꼼꼼한 준비 모습, 전화만으로도 100%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움은커녕 혼란만 드려 죄송합니다.

주자분들께 좀 더 치밀하고 편한 도움 못 드려 죄송합니다. 완주하신 분들껜 세상에서 최고 행복할 수 있는 특권을 드리고, 다음으로 미루신 분들껜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마라톤, 나를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묘비명  (0) 2012.12.31
마라톤이 준 선물  (0) 2012.11.02
2012 하계수련회 결과보고  (0) 2012.07.27
종단 실패에 대한 변명 & 자봉기  (0) 2012.07.27
7부 능선 - 성지순례222 참가후기  (0) 2012.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