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비가 내린다. 시월의 마지막 하늘 아래로 커다란 눈송이처럼 내려앉는다. 가슴이 무너질 듯 무리지어 낙하한다. 애타도록 정다운 연인과 함께 걷는 젊은 날의 그 길이 아니다. 속절없는 세월, 나는 쓸쓸해야 한다. 나는 슬퍼야 한다. 그러나 가슴 저리도록 고독하지도 애처롭지도 않다. 내 감정이 메말라버린 것일까? 내가 나이를 먹어버린 것일까?
달리기를 시작하기 4년 전의 일이다. 나름대로 자신에게 강하고 탄력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깊은 무기력과 나락으로 빠져드는 나를 절감했었다. 내 육체와 영혼에 새로운 영양과 충격이 필요했다. 그렇게 마라톤을 시작했고 거침없이 달렸다. 풀코스, 100km, 200km, 300km 그리고 부상과 실패...... 지금은 무릎부상으로 인해 1년쯤 달리기를 쉬라는 의사의 권유대로 질주 욕구도 억누르며 애써 유유자적 망중한의 여유를 부려본다. 그다지 초조하지도 답답하지도 않다.
비록 부상 때문에 뛰지 못할망정 마라톤을 경험하기 전보다 10년 쯤 더 젊어진 느낌이라면 누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내 젊은 날에도 꽤나 강도 높은 두 세 번의 도전을 스스로 흡족할 만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후 나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자 용기였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타성(매너리즘)에 빠져들어 매일 술로 지내면서 눈도 침침해지고 몸에 이상 신호들이 느껴지면서 나약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누가 내 나약해져 가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줄 수 있겠는가? 오로지 스스로 자각하고 결단력 있게 일어서는 길밖엔 없다. 그렇게 나를 다잡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비록 부상을 당했지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품었던 기대효과는 200% 얻었다고 자부한다.
달리면서 느꼈던 온갖 고통과 희열과 성취감.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젊음과 용기. 아직도 뭐든 도전하고 활기차게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보다 나이는 더 들었을망정 정신적 신체적 자신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만 된 상태다. 이처럼 작은 부상을 입긴 했지만 달리기가 내게 준 선물은 너무 크다. 부상조차도 앞으로의 긴 인생여정을 위해 잠깐 달리기를 멈추고 다시금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며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 준 것이라 자위해본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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