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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를 찾아서

그녀는 멋졌다. - 핫썸머남산혹서기마라톤

2010-07-18. Hot Summer 혹서기마라톤(하프).   시각장애인 염동춘님 가이드 기록 : 2:51:35.

  핫썸머남산혹서기마라톤 대회는, 어지간히 큰 3개의 고개로 이루어져 있는 3km 거리의 남산 중턱 산책로를 왕복하는 경기이다. 따라서 풀코스는 7회전을 해야하니 42개의 고개를 넘어야하고, 하프코스도 21개 이상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힘든 코스이다. 그러니 초보자가 도전하기에는 꽤나 힘든 코스이다. 

    최순자. 이 분을 처음 본 건 6월13일 고양마라톤에서이다. 그때 처음으로 10km인가를 뛰신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한달여가 지난 이번 대회에서 그 힘든 남산 코스를 비록 시간은 좀 걸렸을지라도 끝내 하프코스를 완주해내셨다. 어제 우리 클럽 멤버 중 가장 늦게 완주하시고,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오시자 모두들 박수를 쳐주었었다. 물론 나도 박수를 쳐주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녀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를 잠시 잊고 있었다. 꽤나 급한 매너리즘에 젖어들고 있다고나 해야 될까? 내 자신이 벌써, 꼬리가 다 없어지기도 전에 올챙이 시절을 망각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최순자씨는 참석하지 않은 어제 뒤풀이에서의 얘기다.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영재 형님이 말씀하시길, 최순자씨 오늘 질려버려서 영원히 마라톤과는 인연을 끊어버릴 까봐 걱정되신단다. 초보자가 꽤나 될 몸무게로 산악훈련코스 같은 힘든 곳을 달렸으니 무릎은 성할 것이며, 몇날 며칠을 고생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또 볼 수 있을까 걱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형님의 말씀을 듣노라니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록 나 아닌 남의 일이지만 벌써 마라톤의 진한 감동을 잊어버릴 만큼 무감각해져 버렸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배려심이 없었던 것인가?

  내가 처음 10km 대회를 참가해서 걷다 뛰다를 반복하면서 했던 생각들이, “역시 나는 뛰는 건 소질도 없고, 맞지도 안는 거야.” 하면서 낭패감, 열패감에 빠졌었다. 속된말로, “오늘 당장 한번 쪽 팔리고 말아 버리자. 염치없는 얘기지만 저하고는 정말 안 맞아서 못하겠네요.” 이렇게 대사까지 준비하고 골인했었다. 그런데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몇 배의 큰 감동을 느끼며, 그 곤혹스런 고통을 망각하고 다시 멍청하게 뛰어오지 않았던가?

  마라톤을 시작하고 10km, 하프코스 대회를 여러 번 참가하고 난 뒤인 3~4개월 후에 충무로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시간이 나서, 남산 코스를 3회전 18km만 뛰어야지 하고 시작했다가 워낙 힘들어서 겨우겨우 2회전으로 끝냈던 적이 있다. 그러니 시작한지 한두 달 밖에 안 되는 사람이 아무리 연습을 열심히 많이 했을지라도(또 급작스레 연습을 많이 하는 것도 몸이 고장 나는 역효과만 오지 않는가?), 남산 롤러코스터 코스는 정말 무리였다. 거기다가 내리막에서는 몸무게 대한 충격이 수배로 증가하기에, 몸무게가 평균인 사람보다 무릎에 무리가 두배 세배 더 가해지니, 후유증이 오죽할까 싶다. 우리는 어제 헹가래라도 쳐줬어야 한다. “당신은 위대했었다고......”

     나는 자주 아내에게 ‘똥배 똥배’ 하면서 놀린다. 이렇게 아내를 놀리면서까지 충격을 주려는 이유는, 때론 비만이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아내는 무척 억울해한다. 내가 한가하고 돈 걱정 없는 유한마담들처럼 뷰티샵, 핼스클럽이나 다니면서 살 빼고 지방흡입해서 미시족이 될 수 있는 처지냐고...... 그러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물론 나도 속물 같고 마네킹 같은 쭉쭉 빵빵 백치 미인보다는 대화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진 내 아내가 좋다. 빼빼 마른 걸그룹들 흔들어대는 엉덩이에 눈길이 전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아무 생각없이 침 흘리며 히히덕거리는 속물이 되는 건 싫다. 이분은 뒤늦은 결혼에 잘 되지 않는 임신을 하기 위해서 늘렸던 체중이 현재까지 빠지질 않고 있다고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단순히 살만 빼고자 한다면, 마라톤은 덜 효과적일지도, 너무 고통스런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라톤을 즐기는 단계까지 들어선다면, 다른 방법에 비해 훨씬 요요 걱정은 덜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무라까미 하루키’의 말처럼 마라톤이 본인의 스타일에 맞아야 하겠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대중 스포츠이면서도, 별 돈도 안 드는 시간적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운동인 동시에 얼마나 자긍심을 갖게 하는 운동인가?

  다시 한번 최순자님께 무한한 찬사와 격려를 보내는 바입니다. 어제 술자리에서 조남옥씨 한테 얼핏 듣기에, 당신의 마라톤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서 가르치는 학생들이 다 보도록 하여, 스스로 단단한 배수진까지 치고 계시기에 포기하는 일을 없을 거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부디 이 시험의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시어, 다음 대회에서는 약속대로 30분만 기다리게 해 주시고, 고통도 잊어버린 무심한 경지로 어두운 고개를 넘어 밝아오는 가슴 벅찬 여명을 맛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