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자격
철근 일을 이끌어가는 반장이 있다. 60대 중반은 넘었을 것 같다. 철근공들에게 작업 지시하랴, 철근 밴딩하랴, 직접 갈고리질 까지 참 열심이다. 그런데 철근공 들에게 너무 함부로 한다. 좋은 말로 해도 다들 알아듣고 고분고분한데도 욕지거리 막말에 신경질이 너무 잦다. 다른 반장하고도 암투를 벌이다 결국 쌍욕을 해대며 싸우고 쫓아 보내버렸다. 사측에서는 그래도 이 반장이 나은 것 같으니 선택했을 것이다. 철근공 들에게는 함부로 할망정 사측 눈치 잘 보며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반장보다 어려보이지도 않는 오랜 경력의 사람들 서넛이 참다못해 막말로 싸우고 그만두었다. 그런데도 전혀 변하는 게 없다. 인부야 새로운 사람을 부르면 되는 것이다. 궁시렁 궁시렁 얼마나 잔소리를 해대는지 모두들 저 사람은 저렇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나보다고 비아냥댄다. 실수는 남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도 부지기수다. 슬라브에 올려놓은 철근 100가닥 중에 68가닥을 자르라 해서 잘랐다. 그런데 잠시 후 50가닥 남겨놓고 나머지 자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노발대발이다. 본인이 싫어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으면 지금 그거하고 있을 때냐며 떼어놓는다. 수시로 화가 치밀지만 바보처럼 허허 웃고 말아야지 하면서 참으려 애쓴다. 그러나 ‘나이 어디로 처먹었느냐’고, ‘난 당신 일당 절반밖에 못 받아, 꼰대 짓 좀 그만해.’ 소리가 입속에서 맴돈다.
모든 게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라면 막노동판에서 반장노릇이나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못난 인간들한테 완장하나 채워주면 미쳐 날뛰며 인간 백정노릇 했던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홍위병들이나 서북청년단들처럼 말이다. 아무리 거친 막노동판이라지만 동등한 인격을 갖고 똑같이 일당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끼리 그토록 방자하게 군다면, 그런 자가 전쟁 통에는 야만적 백정노릇을 하지 말란 법 없을 것이다. 물론 좀 잘났다는 정치모리배들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지만 말이다.
'막노동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욕지거리 (0) | 2015.05.18 |
---|---|
비를 기다리는 마음 (0) | 2015.05.18 |
주유[注油]하듯 먹는 밥 (0) | 2015.05.18 |
고문관 노릇 (0) | 2015.05.18 |
초보 철근공 (0) | 2015.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