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리는 마음
이십대 때 학비를 번답시고 토목현장에서 일 년 동안 일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젊어서였는지, 교외 현장 조립식숙소에서 생활하며 공휴일도 없이 일 하는 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었다. 요즘은 공휴일에 쉬는 현장들이 많지만, 이 현장은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공사를 한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공기[工期] 단축만으로도 많은 경비절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쉬지 않고 강행하는 것이다. 인부들 또한 일을 해야만 일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휴일에도 나오라 하면 불만 없이 대부분 나온다. 나 또한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휴일에 일을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이곳 인천 현장은 서울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바닷가라서 그런지 날씨가 꽤 독특하다. 4월인데도 아침에는 쌀쌀해서 모닥불을 피워야 하고, 서울 경기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는데도 이곳은 비가 내리질 않는다. 그러니 쉬는 날도 없이 날짜며 요일도 잊고 계속 일을 했다. 경험이 부족한 나로선 노동에 맞게 신체 적응도 안 된데다 요령도 부족하다. 또 기술 없는 나를 일하게 해준 소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하려다 보니 많이 지치고 힘들다.
일 한지 2달이 다 돼가도록 아침이면 손이 퉁퉁 부어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다. 이 현장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휴식이 좀 필요하다. 하루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 나 자신이나 남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오기로 버티고 있다. 핑계 대지 않고 떳떳하게 쉴 수 있는 날은 비 오는 날이다. 일 못해 일당을 못 받을망정 우산장수보다도 더 비가 그립다.
둘이서 숙소에서 저녁 겸 먹는 통닭
장기간 쉬는 날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로터리’라는 곳이나 ‘인력사무실’을 통해서 온 인부들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부르지만 직영 인부들은 ‘일 없는 날’(‘대마찌’라고 하며, 작업 진행상 일이 끊겨 쉬는 날) 빼고는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강제성은 없지만 직영 인부들은 첫째 일당 때문이긴 하지만 되도록 현장의 일정에 부응하려 한다. 그러니 눈치 안보이게 다 같이 쉬려면 비가 와야 하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일행들끼리 또는 새로 만난 사이에 ‘비오는 날 한잔 하자.’는 말을 하곤 한다. 이토록 기다리던 비가 출근 전부터 내리면 헛걸음하기 싫어 아예 출근을 안 한다. 도중에 비가 내리면, 빗발의 세기나 강우 시간을 가늠하며 노사 모두 약간 뜸을 들인다. 도중에 일을 접게 되면 노무자 입장에서는 일당이 0.3, 0,5, 0,7과 같이 시간에 따라 일부만 계산되기 때문이고, 사측에서는 공기[工期] 때문이다. 그러나 비가 계속 내리면 을씨년스러워 일 할 맛도 나지 않는다. 또한 처음 내리는 비는 너무 미끄러워, 자재나 철근 등을 다룰 때 미끌리고 걸을 때도 미끄러질 염려가 높기 때문에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 때문에 겨우 0.3정도 하고 마는 날 누군가 ‘면장댁 울력해줬네.“라고 푸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