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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를 찾아서

인생! 도전의 연속? 도피의 연속?-마라톤 두번째 도전

  인생! 도전의 연속? 도피의 연속?-마라톤 풀코스 두번째 도전.

  2009-4-26. 아디다스 MBC 한강마라톤. 기록 3:39:19.

  누군가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라고 말 한다면, 나는 “인생은 도피의 연속”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성격이 적극적이거나 낙관적이지 못해서만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평소에 나 자신을 꽤나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20대 말부터 40대 초반까지는 정상이 아닌 사람처럼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밤낮을 세워가며 일하고 공부하고 많은 종류의 도전들을 하며 살아왔다. “긍정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가져라.” 라는 말을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할 만큼은 했다. 그런데 수시로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꽤나 깊은 벙커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소중한 시간들은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고 계속 흘러가고 있으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낙심과 초조함이 엉뚱한 쪽으로 빠져들어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4~5년 전에 기원을 1년여 다닌 적이 있다. 누가 시키거나 이끌지도 않았고, 내 발로 스스로 찾아갔으니까 능동적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늦게나마 바둑을 취미로라도 공부하고 싶다거나, 사업적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원을 가도 될 만큼 한가하거나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전후 사정이 복잡하고 잘 풀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에 대한 무책임한 도피행위 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주색잡기 같은 신선놀음은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가. 처음 몇 번은 복잡함을 잊기 위해 찾았겠지만 한번 맛을 들이고 나서는 가면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오후만 되면 발길은 기원을 향하고 있었다. 그 당시 있었던 직원이 일본 유학을 간다고 그만둘 때, 송별회 자리에서 하는 말이, 자기는 경리 겸, 디자이너 겸, 사장 역할까지 1인3역을 했다고 할 정도로 내 할일을 등한시 했었다. 과연 이 정도라면 스스로 낮 뜨거워서라도 긍정이니 능동이니 하는 단어를 구호처럼 읊어 대진 못할 것이다. 이렇듯 항상 찜찜한 기분으로 마지못해 접하다보니, 실력은 최하수이면서도 바둑에 대해서는 책 한권 보는 것도 사치고 낭비라고 생각했다. 내 성격이 돈이나 일 등의 이해관계가 없는 자리에서는 꽤나 적극적이다 보니, 대여섯 명 이상이 서로 바둑을 가르쳐준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나이에 바둑 배워서 어디다 써 먹겠냐”고 하면서 배우는 걸 거부했었다. 이렇듯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뺏어가는 ‘바둑’과의 단절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내 의지만으로 쉽게 되질 않았다. 항상 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담배 중독처럼 발길이 기원을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사무실을 멀리 옮길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웃기는 삶의 기술을 터득한 것이 있었으니, 선으로 악을 몰아내는 것보다는, 또 다른 악으로 악을 몰아내는 것이 훨씬 쉽겠다는...... 그래서 바둑을 끊기 위해, 이제 허구한 날 술시만 되면 술친구를 만나는 게 일과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과 돈과 건강을 빼앗아가며, 매일 같은 사람과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다보니, 정말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낼 모레면 50인데, 지금 당장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절망감이 밀려왔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몇 번의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현 사업을 접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작년 여름에 하던 사업을 올 봄까지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몇가지 계획을 세웠었다. 우선 나태해지고 삶의 탄력이 약해진 나 자신의 극기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수단과 징표로서 마라톤을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금연까지 성공시키리라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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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마라톤을 시작한지 7개월, 담배를 참아온 지 4개월이 됐다. 지난 3월의 풀코스 첫 도전은 모든 게 불확실하고 막연한 도전이었다면, 이번 도전은 약간의 여유와 안정감을 가지고 임했던 것 같다. 이 여유와 안정감이라는 것은, 지난 대회에서 sub4를 달성한 게 큰 자신감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성공만능주의나 결과만을 중시하는 세상사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은 결과 하나가 나 자신을 크게 바꿔놓고 있었다. 지난 4월 11일 ‘전기사랑마라톤대회’에서 각시랑 하프코스를 뛸 때의 일이다. 참가자 중 거의 꼴지로 뛰고 있는데, 옆에 우리 또래쯤 돼 보이는 한 쌍의 남녀가 뛰고 있어서 애기를 나눴다. 얘기가 오가던 중 남자분이 자신은 마라톤을 시작한지 4년쯤 된다며, 나는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한지는 7개월이 안되는데, 풀코스 첫 도전에 4시간 안에 들어왔다고 자신 있게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여태 sub4를 못했는데, 꿈이라며 부러워했다. 이렇듯 결과란 것은 사람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하기에, 큰 부상만 안 생긴다면 4시간 안에는 들어오겠지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번에도 나름대로 식이요법은 철저히 하려고 했다. 이번에는 지난 번 보다도 더 다른 음식은 안 먹다시피 하면서, 소금도 없이 등심만을 구워먹었다. 경기 사흘 남겨두고 번개모임이 있을 때도 소주 한잔 놓고 입에만 댔다 뗐다 하면서 참았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까지의 진행 상황도 그런대로 좋은 느낌이었다. 내 차는 인기 선배가 운전을 하고 총무님 차를 타고 갔다. 가면서 같이 풀코스를 신청했던 명호 형님도 불참했으니, 일행들이 나 때문에 2시간 정도를 기다릴 걸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총무님 차로 다 탈수 있을 것 같으니 나만 남겨놓고 가라고 했더니, 걱정 말고 뛰란다.

  미사리 대회장에 도착하니 출발시간이 20여분 남아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물품보관소에 맡기려고 보니 이게 웬일인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한참을 기다려 맡기고 보니 출발시간 2분여 남아있다. 정신없이 헤집고 달려가자마자 바로 출발신호가 울린다. 최소한의 몸 풀기도 못했는데 하는 생각에 출발부터 웬지 찜찜하더니, 한바퀴 도는 경정장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왼쪽 장단지 쪽이 약간 쥐가 나는 느낌이다. 5km 지점쯤 되니 별 느낌을 모르겠다. 7km지점 지하차로를 벗어나서 뛰고 있는데, 한 달림이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나의 마라톤 멘토께서 “뛰면서 비슷한 주력의 기복이 없는 달림이와 함께 달리는 것도 방법.”이라 했었다. 바로 저분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50대 초반 쯤 돼 보이시는데, 안정돼 보이는 자세는 경륜이 있어 보였으며, 다부진 몸매는 끈기 있고 믿음직해 보였다. 다가가서 따라가 보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신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함께 달린다. 그런데 9km지점도 안 됐는데, 하프코스를 출전하신 류재현 형님이 지냐쳐 가신다. “류재현 파이팅”을 외쳐본다. 1~200m 후방에 3:30페메가 있는데, 형님은 최소한 5분은 늦게 출발했을 텐데, 괭장히 빠르다 싶다. 이후로는 특별히 마음 쓸 것이나 집중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돌아오는 재현 형님이 언제쯤이나 보일까? 하며 계속 기다려진다. 드디어 재현 형님이 보인다. “류재현 파이팅” 한번 외치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또 묵묵히 달린다. 급수대가 나오면 나는 경험부족 때문인지 뛰면서 물을 마실 수가 없는데, 같이 달리는 분은 노련하게 잡아 채 달리면서 마신다. 그러다보니 급수대만 나오면 10~20m 처졌다가 힘들게 따라잡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계속 25km 반환점까지는 함께 달렸으며, 3시간 30분 페메도 계속 200m쯤 뒤에 있었다. 다리를 건너 조금 더 뛰다보니 나의 마라톤 멘토께서 맞은편에서 달려오신다. 내심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큰소리로 “이영균 파이팅”을 외쳐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6km부터 1km쯤 계속되는 언덕을 올라오면서 같이 뛰던 분도 놓치고, 3시간 30분 페메도 100m 앞으로 추월해 가버렸다. 왜 이렇게 언덕에 약하지? 근력부족? 지구력 부족? 폐활량 부족? 아니면 총체적인 경험 부족? 너무 허망하다. 불과 1km 거리에서 200m 뒤에 있던 페메가 100m 전방으로 멀어지다니. 아직은 언덕만 나타나면 발이 안 올라가고, 숨까지 가빠지면서 죽을 맛이다. 후반 들어 힘이 부치니까 그런지 갈 때 보다 돌아오는 길이 오르막이 많게 느껴졌다. 그래도 3:30분 페메를 내리막에서는 코앞까지 따라갔다가 오르막에서는 또 멀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32km 지점이후로는 영영 놓치고 말았다. 체력적인 느낌이 더 이상 무리를 하면 그땐 정말 완주도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3km 지점을 지나는데, 25km지점까지 같이 뛰던 분이 쥐가 났다고 멈춰서 몸을 풀고 있다.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고 계속 달린다.

  사실 처음부터 3:30분을 목표로 했던 것도 아닌데. 32km까지는 나의 능력을 한참 초과한 것 같다. 하여튼 3:30분 페메보다 빨리 뛰다가 놓치고 나니, 갑자기 의욕이 꺾이며 목표를 상실해서인지 급격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양 고관절의 통증이 너무 심해지면서, 무사히 완주라도 하려면 속도를 늦춰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속도를 늦춰 봐도 고통은 가시질 않는다. 3월에 첫 풀코스를 뛰고 난 뒤 나의 멘토께 “인터넷에서 읽은 것처럼, 35km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그 이후부터는 제정신으로 달렸다.” 라고 했더니, “역설이겠지.” 하신다. 맞다 오늘의 경우로 보면 역설인 것 같다. 그래도 35km까지는 정신이라도 있었지만, 35km 이후로는 그야말로 악몽을 꾸듯 몽롱한 상태의 무아지경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눈도 가늘게 뜨고 꿈꾸듯이 달렸다. 도로를 절반만 통제하기에 반대 차선에서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도, 마치 꿈결인 듯 아득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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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0분은 놓쳤지만, 3:40분에만 들어가도 대단히 훌륭한 기록이라고 자위했다. 첫 도전 한 달 만에 12분 이상을 단축하는 기록이니 말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풀어버리면 10km에서 10분을 까먹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40km 지점을 통과하면서 시계를 보니까, 자칫 잘못하면 40분 안에도 못 들어갈 것 같았다. 거기서부터는 40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마지막 스퍼트를 해본다. 아득했던 먼 길에 드디어 피니시 아치가 보인다. 혼미한 정신과 고통 속에서도 앞서 달리는 사람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마치 경보 선수들을 보듯 엉덩이가 좌우로 씰룩쌜룩 흔들리는데, 내 뒷모습도 저 모양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양 고관절이 너무 아파 저 모양으로 뛰어지는 것이다.

  조금 있으면 골인이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거지, 카메라들 들고 기다려 줄 줄 알았던 회장님이 안 보인다. 드디어 골인. 내 시계로 3:39:22를 기록했으니 40분 안에 들어온 것은 확실한 것 같다.(공식기록 3:39:19초) 오늘 골인 순간 우리 동료가 보였다면 무조건 그 품에 쓰러졌을 것 같다. 우리 동호회 부스로 내려가려면 파티션을 피해 50m쯤 돌아서 내려가야 하는데,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다. 술 취한 구렁이 담 넘듯, 1m 밖에는 안 될 파티션을 어렵게 넘어 내려가 우리 부스를 찾았다. 그런데 눈과 정신이 혼미해 한참을 헤매고도 찾을 수가 없다.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옷을 찾으러 갔다. 옷을 찾아 갈아입고 막 전화를 하려는데, 총무님이 날 찾아 다가오신다. 황당한 표정이다. 배달된 도시락을 먹고 맞이하러 나가려는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너무 빨리 들어와 버렸단다.

  돌아오는 길에 내 차를 같이 타신 이현철 형님 형수님께서 꽃숙 친구의 페메 덕분에 10km를 처음으로 1시간 안에 들어오셔서, 아주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나 또한 기록이 좋으니까, 그 기록만큼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애초 마라톤을 시작할 때는 기록이나 타인과의 경쟁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나 목표를 두고 싶지 않았었다. 그저 기록 같은 건 남의 일이고, 나 자신을 수련하고, 돌아보고, 채찍질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삼고 싶었었다. 그런데 초심과는 달리 기록에 관심과 욕심을 내고 있다. 조금은 변명이고 합리화일지 모르겠으나, 접하다 보니, 마라톤에서의 기록이라는 것은 마라톤의 존재 가치이며 마라톤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