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횡단 308Km 울트라마라톤5 - ‘잠을 쫓는 주사’.
유독 밤만 되면 더욱 더 기승을 부리는 폭우 속으로 뛰쳐나가자 단 몇m도 못가서 갈아 신은 신발이 젖어버린다. 비가 워낙 세차게 퍼부으니 선수들 불빛도 보이질 않아 제대로 가고 있는지 불안하다.
빠듯한 시간, 쏟아 붓는 비, 험한 지형, 잠과의 전쟁을 치르며 오늘 밤에 25Km 단위의 cp 두 곳을 시간 안에 통과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이번 완주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졸려 죽겠다. 원두막에 들어가 쭈그리고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추워서 잘 수가 없다. 7~8분 꾸물대다 다시 길을 나선다. 한참을 가다보니 경로당 처마 밑에서 한 무리의 불빛이 깜빡여서 다가가 시멘트 바닥에 누워보지만 역시 추워서 잠이 오질 않는다. 다들 다시 일어나 조금 가다보니 폐가가 하나 있다. 우르르 몰려 들어가 각자 자리 잡고 눕는데, 소파에 가제도구며 이부자리가 있는 걸 보니, 거지의 거처인 듯 했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소파에 앉아 잠을 청해보지만 워낙 잠에 예민한 성격인지라 피곤하긴 해도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내 기억에 단 10초라도 잠이 들었나 싶은데 졸음이 싹 가시고 견딜만해졌다. 마치 잠을 해결하는 주사라도 맞은 것 같다. 사흘 동안 눈을 감고 누워본 것은 1~20분씩 3~4회가 되지만 실제로 잠 든 시간은 채 1분이나 될까 싶다. 그러고도 잠을 극복했으니 인간의 적응력이 꽤 강하긴 한가보다.
다시 무리지어 전진하는데, 크게 도움 될 것 같지도 않은 지도 하나 건네줬다는 인연으로 박윤상님이 무겁게 지고 가던 박카스도 건네주며 다정하게 챙겨주신다.
굽이굽이 끝이 없는 급경사의 고갯길을 돌고 또 돌고 오르고 또 올라, 새벽 1시가 다 되어 224Km 지점인 해발 950m의 태기산 정상의 5cp에 컷오프 40여분을 남겨두고 도착했다. 체크와 함께 따뜻한 커피 한잔 받아들고 곧장 동진을 시작한다.
이제는 한없이 이어지는 내리막이다. 장경비인대 파열로 맘대로 뛸 수 없으니 일행들보다 앞서 느리게 뛰는 속도는 될 정도로 구르듯이 내려온다. 내리막이 끝날 즈음인 봉평읍내 입구에서 아까 함께했던 무리를 만나 함께 달리다 걷다를 반복한다. 지금 이 시점은 모든 면에서 가장 힘든 시점인 듯한데, 컷오프 시간까지 빠듯하다. 어쩌면 주최측에서 완주율을 조절하기위한 난구간으로 설계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구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단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싶었다. 다리도 약간 우선한 것 같아 일행을 따라서 함께 뛰었다. 252Km 지점인 진부의 속사삼거리에 있는 6cp도 컷오프 45분을 남겨두고 11일 오전 6시 45분에 통과했다. 큰 고비들을 넘기고 나니 이제 성공이 손에 잡힐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이제는 밥이 넘어간다. 맛있게 밥을 먹고 좀 소란스럽고 비좁긴 해도 처음으로 바람 없는 아늑한 식당 방에서 20여분 누워서 잠을 청했다. 역시 1분이라도 잠을 잤을까 싶지만 거뜬하다.
다시 동진을 시작해 속사릿재 정상에 올랐다가 긴 내리막에서 시간을 벌어놓는다. 진부 읍내를 통과하고 긴 오르막을 지나 싸릿재 정상에 올라 다시 한참의 내리막을 지나 276Km 지점의 횡계 삼거리에 있는 7cp에 역시 컷오프 40분 전인 낮12시 20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이 직접 만들어 오셨다는 닭죽은 정말 맛있었다. 아마추어의 솜씨가 아닌 전문 요리사의 솜씨 같았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다리 부상 때문에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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