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횡단 308Km 울트라마라톤4 - ‘왜 뛰느냐고? 괴짜니까!’.
기록 체크를 하고 대회본부에서 나눠준 도시락을 먹으려하니 도저히 들어가질 않는다. 옆에서는 잘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라도 먹으라는데 몸이 받아들이질 못한다. 이런 때마다 느끼는 기분이 ‘내 체질이 너무 예민하고 적응력이 약해 이런 험한 경기를 하기엔 부적합한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곤 한다. 이만식님의 울트라 동지인 듯한 미녀 누님이, 준비해온 따뜻한 물을 따라주며, 물이라도 말아 들라 해서 그렇게 억지로 한술 떴다.
급하게 양말과 신발만 갈아 신는데 벌써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세심하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어두운 밤길에서 혼자 외톨이가 되어 헤매지 않기 위해서는 서둘러야한다. 대충 채비를 갖추고 우의를 뒤집어 쓴 채, 폭우가 쏟아지는 칠흑 같은 어둠속으로 전진이다. 불과 몇 분도 안 되어 신발은 도로 젖어버린다.
제방 밑 길을 달려 큰 도로로 올라와 무리지어 한참을 달리는데, 뒤따르던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방향을 거꾸로 틀어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팔당대교로 진입하기위해 길 같지도 않은 둑을 타고 올라가 어렵사리 팔당대교에 진입했다.
비가 워낙 세차게 내렸기에 대회본부 측에서도 안내요원을 배치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칠흑 같은 어둠속에 인적도 없기 때문에, 다음 대회 때는 초행인 선수들을 위해 야광 안내 표지판이라도 세워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계속 쉬지 않고 들이 붓는 빗속을 뚫고 몇 개의 터널과 긴 용담대교를 지난다. 늦은 밤 시간에 폭우 탓인지 지나가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도로 바닥에 고인 물을 피하기 위해 2차선 안쪽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면 많은 차들은 1차선으로 피해 속도를 줄여 달려주기도 하지만, 어떤 차들은 빠른 속도로 경적을 울리며 달려들어 도로 바닥에 고인 물폭탄 세계를 퍼붓고 달아난다. 아마 저들의 심리는 “미친것들 헛지랄 하지 말고 자빠져 잠이나 잘 것이지.”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괴짜들이 변화 발전시키지 않을까 싶다. 또한 괴짜가 많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탄력성과 건강성을 내포하고 있어 누구도 쉽게 넘보지 못할 것이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편협함에 빠지면 망하는 도리 밖에 없다는 걸 수많은 역사가 말해주지 않는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133Km 지점인 양평의 ‘기분좋은 휴게소’에서 잠깐 잠을 자고 가기로 했다. 휴게소 문은 닫혀있고, 바람이 쌩쌩 부는 통로의 차가운 타일바닥에 박스만 깔고 누워 잠들을 자고 있다. 나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박스라도 찾으려 해도 보이질 않아 그냥 맨 바닥에 우의를 뒤집어 쓴 채 누워보지만 추워서 잠이 오질 않는다. 3~40분을 뒤척이다가 일어나 왠지 미심쩍어 지도를 꺼내보았다. 아까 누군가 3cp가 18Km 남았다고 했는데, 확인해보니 20.5Km가 남아 있었다. 남은 시간이 빠듯해 서둘러 일어나 달려나가는데, 나는 왼쪽 장경비인대의 통증이 심해 도저히 뛸 수가 없다. 결국 혼자 처져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걸어본다. 나는 평소 걸음이 꽤 빠른편이다. 빨리 걸으면 Km당 9분대도 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마음은 급한데 뛰지 못해 답답하긴 해도 속보로 컷오프 45분 전인 10일 아침 7시 15분에 154Km 지점의 3cp를 통과했다. 아! 딱 절반 왔는데 다리며 무릎 상처가 깊지만, 시작이 반이고 절반 왔으니 90%는 끝낸 것 아닌가 하고 호쾌하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드디어 첫 번째 높은 고개인 도덕머리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 힘들게 올라갔다. 정상에 오르니 강원도 표지판이 보이는 걸 보니 여기서부터 강원도 횡성인 모양이다. 고개 마루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있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물고 따뜻한 커피를 빼 마시는데, 주차된 차에 타고 있던 중년의 여인이 대단하다며 추켜세운다. 잠시 후 한 선수가 넘어오기에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권하자 커피만 한잔 받아 마시며, 부상이 심한데다 강원도 땅까지 밟아 봤으니 여기서 경기를 끝낼 거란다. 안됐지만 전염될까봐 안들은 걸로 하고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한참을 또 다른 언덕을 오르고 있는데, 아까 가게에서 만난 여인이 차를 몰고 가면서 말을 건네는데, 선의의 얘기지만 이브를 유혹하는 꽃뱀 같기도 한, “태워드리고라도 싶지만 당연히 사양하실 것이고, 지금 당신에겐 이게 조금이나마 피로를 잊게 하는 약이 될지 모르겠다.”며 한편의 시가 적힌 A4용지를 건내 주었다. 보아하니 시 낭송회 같은 걸 하기위해 연습하고 있는 것인 듯 했다. 건네받으면서도 내 속으론 “마음은 고맙지만요, 전 지금 마음의 양식보다는 한 잔의 따뜻한 커피가 훨씬 절실한데요.”
시간이 지나면 다리가 나아지려니 했는데, 아직도 뛰면 통증이 심하니 잠시도 쉴 틈 없이 하루 종일 아이스크림만 3개를 사먹고 계속 혼자서 전진이다. 그래도 지금은 낮이고 길이 복잡하지 않으니 다행이지만, 남들과 쉽게 보조를 맞출 수 없는 오늘밤이 문제라 시간을 좀 벌어놔야 하는데, 컷오프를 통과하기도 벅차다.
어렵사리 4cp가 있는 206Km 지점의 둔내휴게소에 도착해 밥을 먹으랴 채비 갖추랴 정신이 없다. 배낭의 짐들을 바꾸기 위해 꺼내보니 칫솔과 치약이 들어 있다. 사흘 동안 뛰면서 옆사람에게 입냄새 안 풍기려고 챙겨 넣었던 것이다. 설마하니 화장실에서 양치질 할 시간도 없으랴 했는데, 소변도 뛰면서 그냥 빗물에 흘려보내는 마당에 양치질은 내겐 어림없는 사치요 꿈일 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짐들을 빼내고 물과 최소한의 비상식량만을 넣고 양말을 갈아 신는다. 발가락과 발바닥은 어떻게 손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할머니 얼굴처럼 쭈글쭈글 주름 잡혀 온통 떠 있는 상태다. 그냥 양말만 갈아 신어버리고 만다. 졸려서 한숨이라도 자고 싶었는데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빨리 들어와 한숨씩 자고 일어나 출발하는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선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니 나도 불안해 전혀 쉬질 못하고 출발 채비를 갖추는데, 과연 컷오프에 걸리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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