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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를 찾아서

한반도횡단 308Km 울트라마라톤2 - ‘입영전야’

한반도횡단 308Km 울트라마라톤2 - ‘입영전야’

  나는 남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려 하고, 남에게 조금 베풀려고는 해도, 남에게 받거나 칭찬받는 것엔 익숙하지도 자연스럽지도 못하다. 성격이나 살아온 습성이 그러다보니 남들에게 사람의 도리는 하려해도 내 문제에 대해서는 나 혼자의 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번 한반도횡단 대회를 앞두고 주변사람들에게 거의 얘기하지 않았었다. 주변에 알리지 않은 건 이러한 못난 성격 탓도 있지만, 열이면 열 모두 진정한 염려에서든, 아니면 마라톤 시작 2년도 안된 게 너무 나댄다는 투의 떫은 표정의 비아냥 섞인 시샘에서든 “미친 짓을 왜 하느냐?” 소리를 듣기 싫어서이기도 했다.

  유일한 성공 기원자일지도 모르는 내 반려자의 물심양면의 배려하에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이번 대회와 겹치는 “국제인쇄산업전”을 보기위해 8일 아침 킨텍스로 갔다. 예전 같으면 한나절을 봐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오늘은 2시간도 안되어 관람을 끝내버렸다. 왠지 기분이 개운하지 않고 약간 몽롱한 게, 대회에 대한 압박감이 심한 것 같다. 킨텍스를 빠져 나오려는데, 내 마라톤클럽의 다정한 형님이자, 마라톤 시작 6개월 만에 처녀 출전한 풀코스 대회에서 3시간 52분의 기록을 달성할 수 있게 도우미를 해주신, 이번 대회의 출발점인 강화 창후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교동도 출신의 순박한 순민 형님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강화까지 태워다주시겠단다. 다른 친구가 태워다 준다는 얘기와 함께 형님과의 따스한 통화를 끝내고, 또 한사람의 성공 기원자인 친구의 차를 타고 강화로 향했다.

  숙박지인 서해유스호스텔 언덕을 올라가는데 왠지 훈련소 입소하는 것 같은 압박감에 심호흡이 절로 나온다. 예전 100Km 울트라대회 처녀출전 때의 수능시험장에 들어서는 듯한 기분하고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과 압박 강도가 느껴진다.

  도착해보니 아직 대절버스는 도착하지 않았는데, 이번 대회의 최연소 참가자인 27세의 해군 SSU대원이라는 까무잡잡하고 단단한 근육의 젊은 친구가 주차장에 서 있었다. 그를 보자 멀대같고 희뜩한 내가 신체적 열등감이 느껴졌다.

  대회 진행 안내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대회 참가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대부분 구릿빛의 피부와 마른 듯한 체구들이 대추나무 같이 단단하고 야생마처럼 강인해 보였다. 반면 내 모습은 한껏 물을 머금고 있는 고무나무에, 꿈뻑꿈뻑 겁먹은 황소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소속된 마라톤클럽의 기둥이자 다정한 친구 남옥에게 전화가 왔다. 전개될 고생이 너무 걱정되는 모양이다. 이제 오히려 내가 남 일처럼 무덤덤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긴장을 너무 한 탓인지 낮부터 머리가 찌근거리며 아팠다. 혹시 두통이 심해져 내일 출발도 못하게 될까봐 걱정된다. 사흘 동안 잠 못 잘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졸려서 하품만 연신 나온다.

  숙소에 돌아와 서둘러 짐정리를 끝내고 각시한테만 급하게 전화 한통 하고 9시도 안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제발 날씨라도 도와줘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