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진상.
요 며칠은 블랙코미디 영화의 조연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 잘난 주연은, 속된 말로 진상도 이만 저만한 진상이 아닌,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얘기다. 따라서 아무리 가감 없이 있었던 그대로만 얘기한다 해도, 과장스럽게 살을 붙인 삼류 코미디로 느껴질 것이다. 어쨌거나 이 얘기는 남을 흉보는, 그것도 고귀하신 ‘돈님’을 주시는 지엄하신 고객님 뒷담화 까는 졸렬하고 치사한 이야기라서 맘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북하고 매스꺼운 얘기를 굳이 하려는 이유는, 이 또한 흑을 보여줌으로써 백의 가치를 상기시켜 주려는 조물주의 깊은 뜻인지도 모를 거창한 뜻을 전파하고 싶어서이다. 저토록 이기적인 사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의미와 선에 대해 생각해보고 담금질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 말이다. 아니 뒤에서라도 맘껏 조롱해보고 싶어서이다. 귀 가려워 죽을 정도로......
이 코미디의 주인공께서는 남에 대한 배려심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는가 싶다. 세상을 온통 계산적이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고 의심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 조금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이유 하나로 거의 완벽을 요구하며 한 치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다. 또 자신의 취하고자 하는 바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업자의 약점일 수도 있는 ‘결제’라는 수단을 야비할 정도로 최대한 무기로 활용하여 악착같이 모든 뜻하는 바를 챙기곤 했다.
처음 이 인테리어 공사를 계약하는 과정이야 내가 지켜보지 않아서 주인공께서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공사를 시작하면서 사장님이 “주인 여자가 심각할 정도로 까다로우니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일하러 오는 사람들마다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너무 힘들 것 같아 계약을 안 하려다가 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나 혼자 하는 대충의 철거가 끝나고 샤시·씽크대·페인트 등 기술자들이 와서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40대 중반이나 될까 한 주인 여자가 나타나 이사람 잡고 한두 시간 저사람 잡고 한두 시간씩 늘어진다. 어쩌다 한두 마디 참견하는 것도 아니고, 일 하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붙잡고 늘어진다.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사장에게 말 하는 게 도리일 텐데, 최소한의 상식과 개념이라도 탑재했는지 궁금하다.
“사장님, 사장님. 그러니까 내말은요··········”
“아저씨, 아저씨. 그러니까 내말은요··········”
그야말로 고개 처박고 킁킁거리며 똥 찾으러 다니는 똥개처럼 살피고 다니면서 사사건건 참견하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으며 따지고 가르치려 든다.
일본인들의 치밀한 완벽주의에 비해,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빠르고 싸게만 일을 맡기려하니 대충대충주의가 판을 치는 게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꼼꼼하게 요구하고 꼼꼼하게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편적인 기준을 벗어나는 지나친 꼼꼼함을 요구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응당한 추가 부담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싼 임금과 짧은 시간에 평균을 크게 벗어나는 요구를 한다면 가능하겠는가? 따라서 몇 푼 지불한다는 이유로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지나친 요구를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 아닐까? 하물며 의뢰인인지 현장 감독인지 모르게 사사건건 직접 따지고 지시하는 건 독선과 오만의 극치로 보였다.
어쨌거나 다른 현장보다는 훨씬 신경 써서 공사를 마치고 청소 아줌마들을 불러서 청소까지 끝내고 보니, 거실 강화마루 한두 군데와 씽크대 한 곳이 흠이 나 있었다. 다른 현장 같으면 그냥 넘어갈 것 같은데, 곧바로 마루와 씽크대 회사에 연락해 다시 걷어 교체를 한다. 그리고 사장님은 무릎으로 기어다니며 씽크대 등을 다시 청소하고, 나도 흠결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이삿짐이 들어오고 대충 짐 정리가 끝났겠다 싶은 사흘 후에 연장을 들고 집에 들렀다. 주인의 추가적인 요구를 들어주고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잔금을 받기 위해서이다. 샤시와 씽크대도 손 볼 부분이 있다고 한꺼번에 일을 보고 끝내자고 시간 맞춰 오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사장님과 함께 집에 들어서자마자 독 오른 싸움닭처럼 쏘아대면서 덤빈다. 너무 가관이다 싶어 녹음이라도 하고 싶어 휴대폰을 만져보지만, 바꾼 지 얼마 안 돼 녹음 기능을 알지 못해 아쉽다.
“사장님, 청소 아줌마들은 도대체 뭐 했지요? 이 아줌마들이 남에 돈을 거져 먹어버리려하네. 씽크대 안쪽에는 톱밥이 그대로 쌓여 있어서 내가 이틀 동안이나 죽어라고 청소했더니 어깨가 빠져나갈 것 같아요. 이러니까 내가 청소할 때 올라와서 보려했던건데.”
“......”
“그리고. 내가 정신이 없어서 적어놓질 못했는데,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라. 여기 문 손잡이 한번 보세요. 이 기쓰가 뭡니까?”
“이건 우리가 한 게 아니죠. 이삿짐 들어오면서 뭘로 긁었구만.”
몰리기만 하던 우리 사장님도 드디어 큰소리를 내며 반격이다.
“아니 바깥쪽도 아니고 안쪽이 어떻게 이삿짐 때문에 기쓰가 납니까?”
“우리가 이사들어오기 전에 얼마나 꼼꼼히 살폈는데요. 이렇게 기쓰 난걸 끼워놓고 돈 받을려고 하겠어요? 하여튼 이것은 새 걸로 교체해 드릴께요. 그리고 또 다른 것은요”
“여기 스위치 한번 보세요. 가운데가 벌어졌지요.”
다른 집 같으면 대개는 오래된 스위치와 콘센트 등을 새 걸로 교체하는데, 검소해서 그냥 그대로 쓰는 것 까지는 좋다고 치자. 그런대 아남에서 나오는 스위치는 3구였던 걸 가운데가 하나 빠진 2구용 똑딱이만 끼워주면 맞게 돼 있다. 따라서 다른 곳의 2구 스위치 없앤 걸 똑딱이만 빼다가 이곳에 끼우니, 다른 몸체라서 그런지 가운데가 약간 벌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예전엔 안 그랬다면서 우긴다. 하는 수 없이 이것도 다시 전파사에서 4200원을 주고 사다가 교체해 주었다.
이번에는 안방 사각등이 약간 삐뚤어져 있단다. 우리 사장님이 잘 모르겠다고 하자, 바닥에 누워서 보란다. 침대에 누워서 보면 되게 신경 쓰인단다. 별수 없이 우리 사장님 바닥에 벌렁 누워서 보고는 약간 틀어주란다.
그나마 이 사람의 한가지 다행인 점은 남한테만 깐깐하지 않고 자신에게도 철저하다는 것이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서랍안쪽 틈새를 젓가락으로 걸레를 비집어 넣고 닦을 정도로 꼼꼼했다.
가운데가 살짝 벌어진 원래 스위치 갈아 끼우려고 다시 사 온 스위치
사장님은 바빠서 떠나고 샤시와 씽크대 사장님이 남아 있는데, 이분들의 책임 영역이 아닌, 장롱 틀어진 것을 맞추는 것이며, 장롱과 천정 틈새를 실리콘 처리 하는 것 등을 “사장님, 이거는 어찌해야 됩니까.” 하고 교묘하게 묻는 형식을 취하면서(직설적으로 해달라는 말도 아닌) 이것저것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분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도 아닌 걸 여러 번 부탁하려면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를 가진 인간이라면 커피라도 한잔 대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현장들은 공사 중에 주인들이 자주 와보지도 않지만, 오게 되면 음료수라도 사들고 오거나 새참이라도 시켜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이사까지 들어와 살림이 시작된 집에서 커피 한잔 대접해야 되겠다는 상식이나 생각도 없단 말인가?
한번은 내게, 똥개나 어린 애들 부르듯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이리 와보지요.”하는데, 아무리 존재감 없는 잡부라 해도 자기보다 더 먹어 보이는 사람한데 하는 행동이라니, “이런 싸가지 없는 X.”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잔금 중 또 180만원은 남겨놓고 입금을 해주었단다. 사장님 왈, “또 무슨 트집을 잡아서 돈을 깎으려는 수작인지, 책임 밖 일까지 만들어 부담 지우려는 수작인지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수도꼭지 하나 사는데 차가 없어서 좀 태워다 달란다고 해서 내가 태워다 줬더니, 수도꼭지를 사가지고 이번엔 롯데마트로 태워달란다. 모시고 가서 “기다릴까요. 사모님.”하고 말하자, 그냥 가란다. 그리고 나하고는 끝이다.
나머지 잔금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한번은 사장님께 “아파트 평수 넓은 부자들과 평수가 작은 쪽 사람들 중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이고 여유롭냐.”고 물어 봤었다. 사장님 얘기도 내 생각과 비슷하게 오히려 평수가 작은 쪽들이 훨씬 넉넉하고 인간적이고 덜 깐깐하단다. 남한테 야박하고 쫀쫀하게 굴어서 좀 더 잘살면 뭐가 그리 즐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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