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사-도-삼 오산종주 산악울트라 참가 후기.
2009-06-21. 오산종주 산악울트라. 기록 12:35:00
야! 이거야말로 진짜 미친 짓이다. 이렇게 힘든 짓을 왜 하지? 이건 정말이지 두 번 다시 할 짓이 아니다. 마지막 두세 봉우리를 오를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숨 쉬기가 곤란하다. 혼미한 정신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오르막길의 힘든 무게만큼, 내 머릿속을 꽉 채우는 부정의 무게들이다. 죽지 않는 이상 완주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무모한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나보다. 이토록 고된 훈련을 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이며, 무엇 때문에 할까? 여기에는 ‘애국’이라는 거창한 구호나 명분도 없다. ‘독재자’의 필요에 의한 수단이나 강제성도 없다. 아무리 잘 해도 올림픽 메달리스트처럼 대단한 영광과 경제적 이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돈이 나오길 하나? 밥이 나오길 하나? 이렇게 뛰고 있는 나 자신도, 이 무모한 짓을 왜 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남들(특히 장모님)이 볼 때는 어쩌겠는가? 장모님이 그러신다. “운동을 그렇게 무리하게 하면, 건강해지려다 오히려 건강을 해치겠다.”고...... 그러나 단순히 건강만을 생각해서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건강 이상으로 그 뭔가가 있다는 얘기인데....
출발에 앞서 완주 목표 시간은 11시간으로 잡고 싶었다. 물론 이 목표는 스스로에 대한 과신일망정, 시간 안에 완주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듯 완주에 자신을 갖다보니, 목표를 좀 더 상향 조정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어차피 이 대회 참가 자체가 나 스스로에 대한 극도의 한계를 느껴보고, 이겨내 보려는 것일 테니 말이다. 따라서 11시간 정도라면 불가능하지 않으면서도 극도의 고통을 이겨내야 할 목표라고 생각했다. 이 목표대로 사패산 입구까지 3:30, 우이동까지 3:30, 종점까지 40:00의 시간 계획을 세워두고 대회에 임했다.
대회 전날엔 9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어, 1:40분에 벨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먼저 창문을 열고 날씨를 살핀다. 다행히 비는 그친 것 같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무척 많이 내렸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대회가 취소되거나, 달리는데 힘들까봐 걱정 되었었다. 간단한 식사와 바세린을 바르고 2:30까지 모임 장소엘 갔다. 대절 버스를 타고 가는데, 순박한 순민 형님이 싸오신 김밥을 두 줄씩 나눠주신다. 항상 함께하는 정을 일깨워주는 형님은 항상 정겹게 느껴진다.
새벽 3시 반이 넘어서 대회장에 도착하였다. 500~600명의 인원이라면 오봇하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어두운 밤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게 느껴진다. 번호표를 받아서 붙이고, 첫 도장을 찍고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기록이 좋은 영민 선배와 오기 형님은 앞으로 가셨는지 안 보인다. 승창 형님, 순민 형님, 총무님, 중규 동생, 나, 그런데 종일 형님이 안 보인다.
캄캄한 새벽 조용한 레이스가 시작됐다. 일렬로 늘어선 불빛을 따라 묵묵히 진행해 간다. 순민 형님과 중규씨는 자연스럽게 앞서 나가고, 승창 형님과 총무님, 나, 셋은 함께 가다가 나도 약간 속도를 내본다. 시작 20~30분이 지나서 혼자 가기 시작했다. 길을 잘 모르니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쫓아가다보니 꽤나 힘이 든다. 어둠속에서도 가는 길 중간 중간에 안개가 짙게 깔려있는 곳들이 있었다. 안개가 낀 곳을 지나노라면 약한 연기 냄새 같은 게 느껴졌다. 출발한지 40~50분이나 되었을까? 불암산의 가파른 윗부분을 오르면서 숨이 차서 자연스레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자 총무님과 승창 형님을 다시 만났다. 불암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날씨는 그리 맑지 않고 산 아래 이곳저곳 구름도 많이 끼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라이트를 꺼도 될 만큼은 밝아졌다. 불암산 정상에서 확인 도장을 받고, 잠시도 쉬지 않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불암산을 다 내려와서 신발에 들어간 모래를 털 겸, 잠깐 쉬면서 방울토마토 몇 개를 나눠 먹었다.
다시 수락산 등반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오르막은 힘들기에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정상부근에서 중규씨를 만났다. 한참 우리 앞에 있어야 할 중규씨가 길을 잘 못 들어 우리 뒤에 나타난 것이다. 수락산 정상에서 도장을 받고, 우리 네 사람은 한참을 같이 갔다. 그런데 중규씨의 걸음이 꽤나 빨랐다. 본격적인 내리막이 시작되자, 한시도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바퀴마냥, 발이 지면을 부드럽게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야! 저게 바로 오랜 등반의 결과 아닐까?’싶었다. 중규씨는 그렇게 부드럽게 걷고 있는데도 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무릎에 무리가 갈 정도로 통통통 뛰어야만 했다. 무사히 동막골을 내려와 도장을 받고, 주최측에서 준비한 미숫가루 한잔을 맛있게 받아먹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물 두병, 이온음료 한 병, 미숫가루, 도합 1700ml는 마신 것 같다. 방울토마토 서너 개와 오이 한조각과 김밥 서너 개. 여기까지는 3:20분 정도 걸렸으니 비교적 흡족하다.
사패산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 물 두 병과 이온음료 한 병을 샀다. 다시 힘들게 사패산을 오른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꺾어져 봉우리를 오르는 도중에, 내려오는 순민 형님과 종일 형님을 만났다. 파이팅 한번 외치고 서로의 갈 길을 재촉한다. 정상에서 또 도장 하나에 사진 한방 포즈 취하고, 김밥 한 줄을 중규씨와 나눠먹었다. 내려오는 길에 승창형님과 총무님을 만났다. 다시 한 번 파이팅.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산불 감시초소 가기 전에 있는 긴 계단. 몇 번을 멈춰 호흡을 고르며 힘들게 올랐다. 큰 한고비 넘은 기분이다. 포대능선 산불감시초소 도장을 받는다. 여기서는 햇볕이 좀 비치며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 물로 목을 한번 적시고 모자를 눌러쓰고 다시 전진. 또 하나의 큰 고비인 자운봉으로 가는 포대능선 뒷길(?)을 가쁜 숨 몰아쉬며 오른다. 이제부터는 명호 형님만을 생각하며 전진한다. 드디어 형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꿀물 한 병과 콜라 한잔을 연거푸 들이킨다. 김밥을 먹을 거냐고 물으시는데 싫다고 안 먹고, 물만 한 병 더 받아서 챙겼다. 후에 생각하니까 아무리 먹기 싫어도 이쯤에서부터 곡기를 좀 채워갔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든다. 그나저나 형님을 뒤로하고 달리면서도, 저 많은 것들을 혼자서 어떻게 메고 올라오셨을까 하는 생각에 절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속도가 느려져서 우이동까지는 목표 시간보다 좀 늦어질 것 같다. 드디어 그 긴 코스 중 몇 군데 안 되는 뛸 수 있는 우이동으로 내려가는 길. 시간을 만회하려고 중규씨한테 좀 뛰자고 했다. 그런데 중규씨가 앞으로 갈 길이 먼데, 여기서 뛰면 후반에 다리가 풀려버릴 수 있단다. 그리고 자신은 발목이 좀 아프니, 나더러 먼저 가란다. 내가 최고로 힘들게 생각하는 위문까지 오르는 길을 생각하면 시간을 좀 벌어놔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먼저 뛰기로 했다. 드디어 우이동, 기대대로라면 11시까지 도착했어야 하는데 25분 정도 늦어졌다. 걸으면서 주최측에서 주는 수박을 몇 조각 얻어먹었다. 가게에 들러 물 한 병과 이온음료 한 병을 사들고 나오는데, 어느새 중규씨가 도착해 만났다. 다시 출발하려 하는데, 총무님이 다리에 쥐가 났다고, 기다렸다가 승창 형님과 함께 가라고 했단다. 목표에 대한 욕심 때문에 가고 싶었지만, 의리 문제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1차 목표는 포기하고 30여분을 기다렸다. 걸으면서 먹으려고 했던 김밥을 먹으려니까, 모 동호회에서 썰어놓은 수박을 권하며 지금 김밥을 먹으면 안 된단다. 그래서 수박만 몇 조각 더 얻어먹었는데, 결과적으로 김밥 먹지 말라고 한 사람이 선무당 아니었나 싶다. 사패부터 여기까지 오면서 섭취한 음식물은 물 두 병, 이온음료 한 병, 꿀물 작은 것 한 병, 콜라 한 잔, 수박 7~8조각, 사패산 정상에서 김밥 반줄, 따라서 물의 총 합은 2000ml는 족히 될 것 같다.
어제 내린 많은 비로 길들은 많은 물이 흘러내려, 운동화 속으로 자주 물이 들어가고, 바닥에 물이 묻어 있어 바위를 딛기가 조심스럽다. 더군다나 여기서부터는 바위가 많은 지형을 옆으로 가는 길이 많아서 특별히 미끄럼에 주의해야한다. 중규씨의 등산 진가가 여실히 드러나 보였다. 옆으로 걷는 바위에서도 발 앞굽만을 이용해, 크든 작든 한 번도 미끄러짐이 없이, 뚜벅뚜벅 잘도 가는 것이었다. 나는 몇 번을 미끄러지고는, 바위를 옆으로 걸을 때는 여러 번 돌아가곤 했다. 동장대와 칼바위, 보국문을 차례로 통과하며, 소중한 징표, 도장을 꾹꾹 눌러 받고, 또 전진. 대남문에서 기다릴 회장님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걸으면서 통화를 시도해보지만 안 된다. 전에 연습 때는 두 번 다, 대남문을 밑에서 치고 올라갔었는데, 중규씨 따라 위로 가니 한결 편한 느낌이다. 드디어 대남문이다. “조남옥” “박화숙”을 소리내어 불러본다. 대답이 없고, 보이질 않는다. 계속 두리번거리며, 도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저쪽에서 화마클의 누나 같은 친구, 꽃숙이 반기며 온다. 아지트로 따라가 보니 회장님과 이문순 선배님 내외분, 먼저 도착한 순민, 종일 형님이 계시다.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자리에 앉아 허겁지겁 수박화채를 몰아넣는다. 난 꽃숙 친구를 보면 항상 반갑고 기분이 좋아,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든다. 그리고 약간의 탈이 생긴다. 어쨌든 한참을 정신없이 먹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사진으로만 뵀던, 그러나 꼭 뵙고 싶었던 308km 울트라의 사나이(괴물?) 박진순 선배님이 계시다. 뒤풀이 자리에서 많은 얘기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 곧 기회가 오겠죠. 선배님.
많은 식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네 사람이 함께 뛴다. 3시 5분 쯤 됐으니, 이제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다. 계속되는 봉우리들, 금방 둘 둘로 패가 나눠진다. 그러나 순민 형님과 종일 형님이 몇 번을 기다려주신다.
중규씨는 발목이 아프다고 점점 힘들어 하는 분위기다. 마지막 두세 봉우리를 남겨두고는, 정말이지 올라갈 때는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숨이 가빠오며, 극도의 짜증이 밀려온다. 이제 정신도 아득해진다. 휘청거리는 나를 보고, 위험하다고 느꼈던지, 두 분 형님은 나를 가운데 서서 달리게 하신다.드디어 마지막 의상봉 도장을 받았다. 남은 물병을 내려놓고, 형님들이 건네주는 이온음료로 목을 축이고, 곧바로 하산 시작이다. 내리막에서는 밧줄을 주루룩 타고 내려오니까, 순민 형님 보시고, 나더러 엄살이란다. 내리막에서야 그토록 죽을 것처럼 숨이 차질 않으니 내리 꽂는 거다. 몸이 부서지고 무릎이 결딴나도 알 바 아니다. 지금 나에겐 내일은 생각 범위 밖의 일이고, 오로지 완주라는 단어밖엔 없다. 드디어 1km도 안 남았을 평평한 지점까지 내려왔을 때 각시한테서 전화가 온다. 금방 도착할 거라고 얘기하고 끊었는데, 도로에 내려서자마자 바로 만났다. 얼떨결에 휩쓸려 골인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뿔싸, 너무 커다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마지막 2~3 봉우리를 남겨두고, 중규씨는 발목이 아파 약간 처졌었다. 그런데 난 힘든 오르막 때문에, 내리막을 내리 꽂다보니 형님들과 함께 앞서 달렸다. 그렇지만 마지막에서는 좀 기다렸다가 함께 골인했어야 했다. 중규 동생 덕분에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효율적인 레이스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끝나버렸다. 중규 동생한테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완주를 하고도 못내 찜찜하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승창 형님이 시간 안에 골인을 하셨단다. 천만 다행이다. 형님이 시간 안에 완주를 못하셨다면 자책감도 크고, 형님 뵐 면목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오늘 난, 대회가 끝나기 전에 나 자신과 남에게 최소한 두 번은 배신한 느낌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친구만 맞는 꼴은 볼 수 없어 무모하게 몽둥이도 휘둘러보고, 의리 따지다가 어깨와 등에 골병이 들만큼 몽둥이찜질도 당해봤다. 남 보기에는 뼈 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의리나 정의 앞에는 강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어쩌면 부질없는 작은 결과 때문에...... 참 씁쓸하다.
우이동에서 종점까지 물 두병에 꿀물, 수박화채를 몽땅 먹었다. 물을 총 2000ml는 섭취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오늘 총 마신 물의 양이 5500ml~6000ml는 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다른 음식물의 섭취는 너무나 미미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바람도 없이 습도까지 높은 날씨에서, 대동문을 통과할 때 까지도 금방 물속에서 나온 것처럼, 상하의가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물을 마시면 쓴물이 넘어왔다. 그러니 차를 타고 뒤풀이 장소에 왔을 때는 속이 매슥거리고 몸이 쳐져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고맙고 정겨운 이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와서 토하니 까맣게 변한 수박만 넘어 온다. 꽃숙, 그래도 너무너무 맛있었어... 지난 2월 22일엔 수분 부족으로 고생했다면, 이번엔 수분과다에 탈수로 고생한 것 같다. 때론 물도 적당히 마시며, 비례해서 먹기 싫어도 다른 영양식도 적절하게 섭취해야 할 것 같다. 회장님, 총무님, 명호 형님, 박진순 선배님 내외분, 이문순 선배님 내외분, 김인기 선배님, 김진민 선배님, 꽃숙 친구, 따뜻한 배려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드립니다.
오산종주산악마라톤 출전을 위해 여러 차례 산악훈련을 할 때마다 유명메이커 등산복을 걸친 수많은 등산객들과 마주치노라면, 반팔 반바지의 싸구려 체육복이지만 강도 높은 훈련과 개성, 희소성 때문에 은근한 자부심까지 느껴지곤 했었는데, 시간 내에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니 뿌듯한 이 기분은 참 오래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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