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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를 찾아서

폭우 속에서 달리는 맛 - 핫썸머남산혹서기

폭우 속에서 달리는 맛 - 핫썸머남산혹서기.

2009-07-12. HOT Summer 혹서기마라톤(하프).

  마라톤을 시작하고서 지난 겨울에 남산 순환코스를 2~3회 두 바퀴 정도씩 뛰어본 적이 있다. 따라서 오르막에서 유독 약한 나에게는 얼마나 힘든 코스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9월에 100km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하려면 풀코스를 매월 한번 씩은 뛰어야한다는 회장님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래서 7월 대회를 찾아보니, 힘들긴 해도 가깝고 그늘까지 있는 이 대회로 결정을 했다. 대회 접수 마감 하루 이틀 남겨두고 참가비를 송금하려는데, 회장님이 기다려 보란다. 그러더니 다음날 주최 사무실에 찾아가 무료로 참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런데 대회 11일 전에 일본엘 가서, 빠듯한 경비 때문에 일주일을 아침저녁으로 컵라면만 먹다시피 했었다. 또한 오자마자 급한 인쇄물 때문에 대회전까지 3~4일을 날밤을 세워가며 일을 했다. 그 사이 금요일 날 잠깐 짬이 나서 저녁 정모 훈련에 나갔었다. 그랬더니 회장님 왈, 풀코스를 신청한 멤버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 뛰고 대부분 하프만 뛸 거란다. 또한 100% 폭우가 쏟아진다는 일기예보도 있고 해서, 나도 하프만 뛰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하프만 뛰기로 결정했다가, 이 코스의 어려움을 알고, 요사이 컨디션 문제도 있고 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1~2회전만 하리라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금요일 밤에 맘 편하게 술자리까지 참석해서 한잔하고 들어왔다. 토요일 날 오후 7시까지 작업을 해서 교정본을 보내주고, 마트에 가서 소주 한 병과 훈제오리를 사다가 먹고 마셨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가 동대입구역에서 내려 국립극장까지 가는 길에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신발과 옷이 흠뻑 젖어버렸다. 쏱아지는 비 때문에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엉거주춤 옷을 갈아입고 스타트 라인에 서자마자 출발이다. 첫 바퀴를 돌아오는 길에 나의 마라톤 멘토를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함께 뛰다가 오르막에서는 먼저 가시라고 하고, 또 내리막에서는 따라잡고 하며, 한참을 같이 뛰었다. 이 분한테 마라톤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몇몇 대회에서 잠깐 스쳐가며 만난 것 말고는 나란히 서서 같이 뛰어보기는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1~2회전만 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멀어지고 바꿔단 하프 배번만큼은 뛰고 싶어졌다. 더군다나 우리 클럽의 회원들이 많이 참가해 왕복할 때 계속 만나게 되니, 하프 완주의 의욕이 강해졌다. 처음 출발 전까지만 해도 심란하던 비가 뛰다보니 그다지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산종주 때처럼 비는 안 오면서 고온다습한 숨 막히는 상황보다 시원하고 상쾌함이 좋았다. 아무리 굵은 비도 눈 만 보호해주면 되는 모자 하나면 그만이었다. 고향이 시골이라서 그런지 이 나이를 먹어서도, 교외를 가면서 큰 저수지나 바다를 보면 무조건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펑펑 눈이 내릴 때나 답답한 시기에 폭우라도 쏟아지면 미친놈처럼 뛰어다니고 싶은 건, 나만의 마음은 아닐 듯싶다.

  그런데 막상 해 보려다가도 나이에 대한 체면도 있고, 심란함 때문에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미친놈 소리를 들을 일도 없이 아주 떳떳하게 공식적으로 쏟아지는 빗속을 뛰고 있으니,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간 것처럼 싱그런 기분이 들면서 기분이 상쾌하다. 거기에다 기록도 신경 쓰지 않고 달리니 그야말로 즐김의 달리기요, 할 만한 달리기였다. 우리 멤버들과의 약속만 없다면 풀코스를 완주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 만큼, 부담이 없고 마음이 편했다. 대회가 끝나고 돌아와서는 뒷풀이 때 지난 오산종주 기념사진 액자를 선물 받았다. 정말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빛나는 상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사진의 의미가 워낙 크고 자랑스럽기게 아주 기쁘고 뿌듯했다. 오늘은 화정 마라톤과 함께 하기에 더더욱 즐겁고 의미 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