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고 덤벼라.
지난 세월 꽤 많은 분야를 접하고 익혀며 살아오다보니, 낮선 새로운 분야를 접함에 있어 어떻게 하면 빨리 배우고 적응하여, 자신 없는 주변인이 아닌 자신감 넘치는 중심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방법이나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뚜렷한 진로나 목표를 정했으면 엉거주춤 한 발만 들여놓고 애매모호하게 기웃거리지만 말고 몸과 마음을 던져, ‘그 분야의 가장 깊은 곳까지 최대한 빨리 다가가 보려는 노력’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체면이나 가식도 벗어던지고 발가벗고 덤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일이든 새로 시작하면 초기에는 한시적으로나마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다른 걸 어느 정도 희생하면서라도 완전히 미쳐버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많은 일들이 생초보 입장으로 접하고 배워 써먹으려다보면 시간과 수업료와 함께 큰 초기자본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가식과 체면을 벗어던지고 진솔하고 겸허한 배움의 자세로 접근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시간과 돈을 아끼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묘책이 나온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내가 인쇄를 접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원래는 인쇄가 주목적이 아니었는데, 컴퓨터를 통한 ‘즉석인쇄시스템’이라는 연쇄점(체인점)사업을 하다 보니 ‘명함용지’며 ‘스티커용지’판매 수익이 훨씬 짭짤했다. 그래서 인쇄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준비 기간도 없이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일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무식하게 덤비면서 파고 들었다. 그러다보니 원터치(한 번 재단하는 것) 투터치(두 번 재단하는 것)가 뭔지도 모르면서 잔뜩 인쇄해놓고 쓸 수가 없어 그냥 버리는 등, 많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땐 충무로 인쇄 골목을 헤매면서 물어보면, 전혀 인쇄의 기본도 없는 무식쟁이의 질문인지라 일을 맡길 가능성이 없는 손님이라고 생각했는지 대부분 바쁘다고 자세히 알려주질 않았다. 그래서 붙잡고 편하게 물어볼만한 주변 누구라도 없나 하고 친구·동창·사돈에 팔촌까지 뒤져봐도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충무로에서 인쇄를 배웠지만 인쇄에 관한 한 나의 선배나 스승이 없다고 말 할 만큼 힘들게 독학으로 뚫고 지나왔다. 그런데 인쇄 일을 시작하고 사무실을 충무로로 이전하고 시간이 좀 흐르다보니, 충무로에도 중학교 동창, 고등학교 동창, 선배 등등 아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최소한의 경험이나 준비 기간이 없었기 때문에 인쇄나 주변 정보를 전혀 보유하고 있지 못해 오히려 많은 수업료와 시간을 낭비했던 것이다.
어떤 분야를 시작하기 전에는,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한 입장이라 나이가 많아 어디 가서 생초보로 일 배우기도 힘들고, 또 지위와 체면도 있고 하니 몇 번 찾아가서 곁눈질로 보고 묻고 따지고 해서 돈 투자해서 사장님 되면 되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은 최소한 억대 이상의 돈을 투자해 꾸며 논 가게를 빼도 박도 못하고 한숨만 쉬어야 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백견이불여일천(百見不如一踐)’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쇄점(체인점) 본사 사람들의 꼬드김에 혹하고 마음을 빼앗겨버린 주관적인 생각만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에서 백번을 묻고 백번을 본들 약점은 잘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고 체면이 중하더라도 잠시 내려놓고 단 몇 일 이라도 손에 물 묻히고 옷에 때 묻히고 땀 흘리면서 진정으로 접해보면, 그 땐 정말 한쪽으로 치우쳤던 저울추가 평형을 유지하며 보이지 않았던 단점도 보일 것이다. 또 가장 중요한 해당 분야와 나와의 속궁합, 즉 하고 싶은 마음만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200% 발휘 할 수 있을 만큼 취향이나 적성이 맞고 성취욕을 불러일으키는 분야인지를 느끼게 된다고 본다.
이처럼 나는 시간과 시행착오 줄이고 돈을 아끼기 위해 발가벗고 덤벼보는 것이다.
내가 컴퓨터를 익히고 작업 할 때는 허구한 날 사무실 소파에서 자면서 책을 뒤지며 씨름하다보면 동틀 무렵이면 답을 찾곤 했었다. 하지만 전에 접했던 인쇄처럼 인테리어도 억지로 배우려고 해서 배워지는 것이기 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지만 터득되어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라서 수련하는 기분으로 좀 느긋하게 생각하려 한다.
어쨌거나 위와 같은 마음가짐과 자세로 인테리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의 사무실을 소개받고 처음엔 정식 직원이 아닌 가끔씩 일당제로 일을 하는 관계를 생각하며 대면하러 갔다가 졸지에 직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 얘기가 일당제라도 하려면 자기 사무실의 업무 스타일을 어느 정도 알아야 되니 1~2개월이라도 직원으로 근무해 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오래 있지는 못할 거라는 얘기를 분명히 하고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출근 3주도 안 된 어느 날, “직원이 자주 바뀌는 것도 힘들다.” 하시면서, 내게 맘이 있으면 반반 나눠먹기로 할 수도 있으니 생각해보라고 제안을 해왔다. 아무리 여자 혼자 하다 보니 어려운 부분이 많았을지라도 한 달도 안 된 신출내기한테 이런 제안을 해오니 황송하기도 하다. 아마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다지 계산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하면서도 모든 일이나 부탁에 대해 조금도 싫은 내색이나 짜증 한번 안내고 밝은 표정으로 일하니 어렵지 않게 상대의 호감과 필요성을 인정받는 것 같다.
따라서 때론 너무 재거나 잔머리만 굴리지 말고 주인 된 마음으로 일을 하다보면 돈 없이도 쉽게 일어설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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