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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 일기

사장 · 직원 역할 바꿔보기

  흔히들 쉽게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고 얘기를 하지만 과연 쉬운 일인가 싶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를 두고 본다면, 양쪽 모두 각자의 역할과 의무 등 근본적인 존재의 이유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형식적으로나마 ‘역할 바꿔보기’ 같은 하루 정도 행사(이벤트)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주 재미있게 ‘역할 바꿔보기’ 놀이를 즐기고 또 바뀐 역할에서 과거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깨닫고 있다.

  나는 20여 년 전 사회 초년생 시절에 잠깐 월급쟁이 생활을 한 것을 빼고는 대부분 자영업을 했었다. 그런데 그동안 자영업으로 해왔던 컴퓨터나 인쇄 관련 사업이 과거 경력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여서 그야말로 미로 찾기를 하듯 접근하고 행동해 왔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정신과 적응력은 많이 강해졌다. 그렇지만 운영상의 많은 기술적·경험적 지식(노하우)들을 대부분 나의 추측과 감각에 의존하던가, 책 등 간접적 방법을 통해야 했다. 그러니 때론 반복적 숙련에 의한 효율이나 업무의 형식적 측면이 많이 취약했었다.
 
또 남 밑에서 깐깐한 통제와 지도를 전혀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근면 성실한 생활 습관도 약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악착같은 승부근성이 약했었다. 여기에 어설픈 낭만적 성격대로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허점이 많고 실속을 챙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배움은 짧아도 자신의 일에 대해 강한 소신과 형식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가는 지금의 사장님을 보니, 어설픈 멋과 느슨했던 나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진다.

 
요령 안 피우고 적극적으로 일 처리를 하려다보니(때론 할 일이 없어 놀고 있을 때가 더 눈치 보이고 부담스럽다. 그래서 바쁜 직장에서는 직원이 오래 근무해도 한가한 직장은 이직이 잦은 이유이기도 한가보다.) 육체적으로 힘들긴 해도 시키는 일 만 수동적으로 한다는 게 정신적으로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오래하면 진취적 기상이 도태되어 스스로 홀로서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따라서 자신의 꿈과 탄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직원도 어떤 식으로든 사장의 입장에서의 고민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벽지·장판·타일·욕실용품·문·샤시 등등 품목도 많고 또 각각의 품목마다 상표(브랜드)도 많은데, 깊은 관심과 꼼꼼한 성격의 소비자들이 아니고서는 수많은 상표며 장단점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업자가 권해주고 유도하는 상표와 디자인을 따라가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과거 나는 작게나마 내 상표로 청첩장·카드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하면서도 대형 3사에 끼지 못하는 하위 업체라는 이유 때문에 많이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자본력과 규모야 처지지만 상품 디자인 측면에서는 월등한 1위 업체 빼고는 자신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미리 이런 경험을 잠시라도 해봤다면 지레 주눅 들 필요도 없었고, 가격 책정이나 인터넷 판매 등에서 너무 상대적 비교에만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관점의 융통성을 보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되새김되어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 사업 경영상에 낯 뜨거울 정도로 부끄러운 행태 하나는 월급에 관한 것이다. 어떤 땐 매출이 너무 시원찮고 일이 없어 월급 줄 돈이 없으면, 오래 같이 한 직원들이기에 내 맘 알아주겠거니 하고 미루면서도 아주 큰 잘못이란 걸 깊이 있게 느끼지 못했다. 그땐 외국인 노동자들 일 부려먹고 불법 체류자라는 약점 잡고 월급을 안 주는 악덕 업주나, 체불 임금이나 빚을 갚지 않으려고 고의부도 내는 사기꾼이 아니고, 단지 조금 늦는 것뿐이기에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월급을 받아보니 그때의 행태와 생각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를 알 것 같다. 쥐꼬리 만 한 월급을 받는 봉급생활자(샐러리맨)들은 한 달 식비·자녀 학비·용돈·적금 등등, 한 치의 여유나 융통성도 보일 수 없는 그야말로 꽉 맞춰진 톱니바퀴 같은 삶을 사는데, 이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월급날이 정말 기다려지는 날이란 걸 입장이 바뀌어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공룡 기업도 작은 어음을 못 막아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처럼 모든 미래 자금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기란 힘들것이고, 월급을 못 줄 정도의 특수 상황에 빠져 있으면서도 미래가치 때문에 문을 닫으면 안 되는 경우라면, 직원들도 미래에 함께 더 큰 보상을 받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공감이 이루어졌을 때만 임금채불이 허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업주의 잘못 된 사고방식이 문제인 경우가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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